[시론/조지형]부실한 국회, 부실한 나라

  • 입력 2009년 6월 9일 02시 54분


1856년의 일이다. 매사추세츠 주 출신의 찰스 섬너 상원의원은 노예제 폐지론을 강력히 주장했다. 그는 동료 의원을 모욕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어느 날, 프레스턴 브룩스 하원의원은 같은 주의 상원의원이 모욕당하는 모습에 몹시 분노했다. 그는 의사당으로 달려가 섬너 의원을 지팡이로 두들겨 팼다. 의사당은 아수라장이 됐고 섬너 의원은 상처가 완치되기까지 3년이 걸렸다. 국회가 국민으로부터 존경받는 일이 그리 쉽지 않음을 방증하는 일화다. 1780년대 미국 독립 당시 노예제 문제를 제대로 매듭짓지 못했던 후유증처럼, 우리도 남과 북으로 갈라진 건국의 후유증을 여전히 겪는다. 진보와 보수의 이데올로기적 깃발 아래 국회에서는 설득과 원칙 존중, 그리고 상호 존중의 모습을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불신받고 제몫 못하는 입법기관

국민의 절반이 국회를 신뢰하지 않으며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기관이라고 생각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의정활동에 대한 국민의 부정적 평가는 긍정적 평가보다 무려 15배나 높았다. 조사 결과는 가히 충격적이지만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

광우병 파동은 극단적인 사례다. 쇠고기 파동은 근본적으로 이명박 행정부의 무능력에 기인하지만 정치권과 국회에서 주요 국정의제를 충분하고 적절하게 다루지 못한 탓이다. 국회는 통상절차법 제정에 태만했고 행정부 정책의 견제와 통제에 소홀했다. 쇠고기 파동이 절정에 이르는 동안 국회는 의장선출에 42일을, 원 구성에 88일을 낭비했다. 뒷짐을 진 채 방관하면서 국회는 생업에 몰두해야 할 국민을 광화문으로 내몰았다. 지금도 비정규직 대란으로 국민이 심한 몸살을 겪는데 국회는 개원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

국회는 통렬한 각고(刻苦)의 반성을 통해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첫째, ‘일하는 국회’로 거듭나야 한다. 때마다 임시국회 개원 등 소모적인 의사일정 협의에 귀한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지 말고, 연간 국회일정을 연초에 협의 확정하여 국회 운영의 예측가능성과 효율성을 제고해야 한다. 연간 일정의 도입으로 국민이 법률을 제안하도록 하는 스킨십을 확대해야 한다. 행정부의 상시감사를 통해 국정의 효율성 제고에도 노력해야 한다. 미국 연방의회처럼 특정 요일에 특정 운영 내용을 규정하는 캘린더식 운영방식의 도입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둘째, 보스정치를 청산하고 민주주의 원칙을 존중하는 국회가 돼야 한다. 여야 합의를 통한 입법은 독재시대의 유물이다. 여야 합의는 독재자의 결정에 항거하여 여당으로부터 획득할 수 있는 최선의 저항수단이었다. 그러나 미국이나 영국에서 여야 합의가 안됐다고 해서 입법을 원천적으로 방해해도 된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없다. 민주주의란 설득을 통해 입법절차를 진행하고 다수결 원칙에 따라 결정하는 제도다. 다수결의 민주원칙이 제대로 존중된다면 국회의장석을 점거할 필요가 없다.

여야합의 아닌 다수결 원칙대로

셋째, 소수세력을 제도적으로 배려하는 국회가 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미국의 국정조사에서 소수당 의원은 다수당의 의사와 상관없이 최소한 하루 동안 증인을 채택하여 청문할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받는다. 이를 위해 본회의가 아니라 상임위나 소위원회 중심의 운영방식으로 거듭나야 한다. 오늘의 소수세력에 대한 배려는 내일의 자신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다. 국회가 법을 제정하면 행정부는 그 법을 시행하고 사법부는 그 법으로 판결한다. 국회가 부실하면 온 나라가 부실해짐은 당연한 이치다. 국회에 대한 불신이 국가와 국민에 대한 총체적 불신으로 확산되기 전에 시급하게 치유해야 한다.

조지형 이화여대 교수 미국법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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