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흐지부지 뒷걸음질로 땜질하는 교육정책

  • 입력 2009년 6월 8일 02시 49분


새로 생기는 자율형 사립고(자율고)의 입시방식이 서울에서는 사실상 추첨으로 정해졌다. ‘로또 입시’로 비판받았던 서울 국제중의 입시방식보다 학생선발의 자율성 측면에서 더 후퇴한 것이다. 국제중 입시는 그나마 지원자를 대상으로 서류전형과 면접을 거쳐 3배수를 선발한 뒤 추첨하는 방식이었다. 자율고는 내신 성적 기준 안에 드는 지원자 전원을 놓고 추첨만으로 선발한다. 기존 평준화 체제의 강제 배정방식과 별로 다를 게 없다.

이명박 정부가 강조하던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의 틀을 스스로 허무는 것이다. 이 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2011년까지 자율고 100개를 만들어 평준화 폐해를 보완하고 교육의 질을 높여 인재 육성을 꾀하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학생 선발을 운에 맡기는 입시로는 실력 있는 학생을 뽑아 평준화 고교와 차별화한 교육을 실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자율고로 전환하면 사학 재단의 부담이 연간 수억 원씩 늘어나는데 학생선발의 자율도 없는 자율고를 어떤 사립고가 할지 의문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선진화는 사람이 하는 것이며 훌륭한 인재를 얼마나 많이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며 “교육현장에 자율과 경쟁의 숨결을 불어넣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정권 초기 교육의 수월성 확대에 의욕을 보였으나 올 들어 모든 교육정책의 초점을 사교육비 억제에 맞추고 있다. 교육개혁은 공교육을 강화해 장기적으로 사교육을 잡는 방식이어야 할 텐데 선후(先後)가 뒤바뀌었다.

‘대학입시에서 손을 떼겠다’던 정부 약속은 ‘교육협력위원회’를 통해 교육과학기술부가 다시 입시에 개입하면서 흐지부지됐다. 완전 자율에 맡길 경우 사교육비가 늘어난다는 구실이었다. 최근 발표한 사교육 대책에선 특수목적고 입시의 지필고사를 금지했다. 국제중과 자율고의 기형적인 입시도 사교육비 논란 때문에 후퇴한 것이다. 과도한 교육 평등주의의 부작용을 바로잡아 교육경쟁력을 높이는 일은 뒤로 밀리고 자율화, 다양화는 퇴색하고 있다.

위헌적인 사립학교법이 시행되면서 학교 운영에 여러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데도 사학법의 재개정 약속은 진척되지 않고 있다. 포스텍 백성기 총장은 “사학법에 나와 있는 대학평의원회를 곧이곧대로 운영해 보니 주요 의사결정을 내릴 때마다 학생과 직원에게 일일이 동의를 구해야 한다”며 “급속한 환경 변화 속에서 신속한 의사결정이 이뤄지기 어렵다”고 말했다. 사교육비 경감에 매달리느라 교육의 자율과 경쟁력이 오히려 후퇴하는 양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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