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조성하]도박산업 살리되, 통제 제대로

  • 입력 2009년 5월 24일 02시 54분


카지노 스포츠토토 경마 경륜 경정 로또…. 모두가 도박사업이다. 그리고 모두 정부가 허가한 ‘합법적 사업’이다. 도박은 불특정 다수를 겨냥한 사회적 해악이다. 그리고 국가는 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진다. 그런데 그런 국가가 명백한 해악인 도박을 합법화한 이유는 뭘까.

그 논리는 무기산업과 같다. 무기란 인명살상이 전제된 해로운 도구다. 그렇지만 정부는 특정업체에 면허를 주고 생산토록 한다.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카지노도 마찬가지다. 세금만으로는 도저히 공리민복을 실현할 수 없을 때 국가는 도박산업을 허가한다. 그래서 도박과 무기 같은 사업을 ‘특권화사업(Privileged business)’이라고 부른다.

미국을 보자. 50개 주 중 최초로 도박을 합법화한 곳은 네바다 주(1931년)다. 대공황으로 재정이 파탄나자 사막의 땅 네바다 주는 교육 의료 등 주정부가 감당해야 할 일을 다 하기 위해 도박 허가를 내줬다. 두 번째는 1976년 뉴저지 주. 꼬박 45년 걸렸다. 하지만 이후 33년밖에 지나지 않은 현재. 미국에서는 2개 주(유타, 하와이)를 제외한 48개 주가 도박을 합법화했다. 사회적 폐해와 공리민복, 두 측면을 저울질할 때 곱씹어볼 사례다.

이런 도박산업의 확대에는 우리가 잘 모르는 ‘비전(秘典)’이 있다. ‘통제와 규제(control and regulations)의 원칙’에 입각한 철저한 관리다. 한마디로 도박감독위원회(도감위)의 역할이다.

카지노는 ‘아주 사나운 개’다. 집 지키기 등 특정 목적에 유용하지만 잘 묶어두지 않으면 행인을 물어뜯을 위험도 있다. 카지노도 같다. 규제와 통제의 주체인 도감위는 그 개를 묶는 끈과 같다. 이 기구가 미국, 아니 전 세계에서 도박산업 확대에 기여했음은 물론이다. 도감위는 1959년 네바다 주가 최초로 제정한 도박법(Gaming Act)에 근거해 만들어진 뒤 전 세계의 모범이 된 규제통제장치다.

우리는 어떤가. 사나운 개가 느슨한 줄에 묶인 채 이리저리 사람을 물어뜯게 만든 안타까운 형국이다. 규제와 통제를 그 원칙(도박산업의 기능적 기여)에 따라 제대로 수행할 기구와 모법(母法)이 없어서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사감위)라는 게 정부 안에 있다. 하지만 그 조직과 모법, 수행해온 업무를 보면 미국 도감위의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최근 사감위가 내놓은 ‘전자카드제’를 보자. 도박 폐해를 줄이자는 취지는 좋으나 그렇게 할 경우 수입이 줄어(체육진흥기금 1500억 원 이상 감소 예상 주장) 본래 기능을 제대로 수행 못할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사람을 해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사나운 개(스포츠토토)에게 밥을 굶겨 비실거리게 하고 있는 것과 같다. 그 경우 개가 집도 못 지키게 될 것 역시 분명하다.

제주도민의 관광객 전용(내국인 출입) 카지노 도입 요청을 위한 특별법 개정안 발의 움직임도 그렇다. 앞으로 지자체가 저마다 우후죽순처럼 이런 요구를 해댈 텐데 정부는 과연 어떻게 감당하려는 것인지 안타깝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도박산업의 취지를 살리면서 국민을 보호하는 선진적인 통제와 규제의 원칙을 담아 그에 근거해 모든 도박산업을 총체적으로 관리(허가절차, 자격제한, 사고조사 등)하고 통제 규제를 가할 도박규제법(가칭)과 기구가 없다. 이제는 검증된 끈으로 사나운 개의 목을 제대로 매야 할 때다.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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