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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5월 8일 20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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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의 힘은 침묵과 비폭력
이때 군중을 포위하고 있던 경찰차들이 경고방송을 한 뒤 요란한 경고음을 내며 군중을 마구 갈라붙였다. 대형 물대포와 최루탄 차량도 군중 속을 누비며 물과 최루가스를 쏴댔다. 군중은 크게 당황하지 않았고 폭력으로 저항하지도 않았다. 과격한 구호나 선동적 연설도 없었다. 경찰은 시위자들을 경찰봉으로 잔인하게 때리고 외국 기자를 포함한 수백 명을 체포했다. 종교의 자유와 인권 존중을 요구하기 위해 모인 집회는 단 30분 만에 끝났다.
수십만 명의 가톨릭 신자가 서명한 31개항의 청원서 작성자가 국가 및 공공기관 비방 혐의로 체포된 것이 발단이었다. 당시 체코 공산정권은 사회주의 체제를 붕괴시키기 위한 해외의 공작으로 몰았다.
이 시위는 이듬해인 1989년 11월 40년간의 공산독재 정권을 무너뜨린 ‘벨벳 혁명’(무혈혁명)의 전주곡이었다. 브라티슬라바 시위는 세계적으로 대표적인 촛불집회로 꼽힌다. 폭력을 동반하지 않은 평화시위였고 촛불과 찬송가, 기도 외에 과격 행위가 없는 침묵시위였다.
경찰의 무차별 폭력에 짓밟힌 브라티슬라바 촛불의 위력은 강했다. 이 소식은 영국의 BBC, ‘미국의 소리(VOA)’, ‘라디오 자유 유럽(RFE)’, ‘바티칸 라디오(VR)’ 방송을 타면서 자유세계의 심금을 울렸다. 혁명의 동인(動因)이 됐음은 물론이다.
지난해 이명박 정부를 곤경에 빠뜨린 촛불시위가 지난주(5월 2일) 1주년을 맞았다. 사회단체들이 주최한 세미나 등에서 촛불 1년에 대한 평가가 있었다. “거리 민주주의 또는 광장 민주주의를 보여줬다”는 긍정적 평가와 “법치주의 질서를 어지럽힌 폭동 수준이었다”는 부정적 평가가 엇갈렸다.
그러나 촛불은 과거완료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포털사이트 다음의 ‘아고라’ 회원 다수가 폭력시위를 모의, 선동한 혐의로 최근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공포를 확산시켜 촛불의 도화선이 된 MBC ‘PD수첩’은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시민단체 측이 제기한 집시법(集示法)의 ‘야간 옥외집회 금지’ 조항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여부 결정도 아직 나오지 않았다. 헌재 판단이 늦어지면서 사법부 내부에서 분란의 여진(餘震)이 계속 중이다.
2월에는 ‘촛불시민연석회의’라는 새 연합체가 구성됐다. 이들의 창립 선언문은 “지난해 여고생들의 작은 몸부림은 온 국민의 작은 가슴에 촛불을 점화했고…삶의 빛을 안겨다 주었다”면서 다시 정권퇴진운동에 나설 것을 다짐했다. 지난 주말에는 촛불 시위대가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의 하이서울페스티벌 개막식 무대를 점거해 행사를 중단시키는 야만을 저질렀다.
民主의 이름으로 짓밟힌 法治
올해도 심상치 않다. 촛불세력들은 ‘법치의 이름으로 민주를 짓밟았다’고 비난했지만, 오히려 민주의 이름으로 법치(法治)가 짓밟혔다고 해야 진실에 가깝다. 촛불은 묵묵히 자기희생을 통해 세상을 밝힌다. 침묵과 비폭력, 평화시위야말로 촛불집회의 생명이다. 그것이 브라티슬라바 촛불집회의 값진 교훈이다. 자주(自主)와 민주, 민족의 이름으로 친북(親北)과 종북(從北) 반미(反美) 노선을 걸으며 정권타도를 외치는 일부 세력의 불순성은 촛불과 동행할 수 없다.
불법 폭력시위의 대명사로 변질된 촛불은 억울하다. 더럽혀진 촛불의 명예를 회복시켜줘야 할 때다. 촛불을 들고 민주 평화세력으로 위장하는 폭력세력은 용납될 수 없다.
육정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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