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슬픔, 새 아기에 情 붙이며 잊었죠”

  • 입력 2009년 5월 2일 02시 57분


35년간 위탁모 활동을 해 온 조완수 씨. 그동안 152명의 아이가 조 씨 품을 거쳤다. 지난달 29일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자신의 집에서 조 씨가 진석이의 재롱을 보며 즐거워하고 있다. 변영욱 기자
35년간 위탁모 활동을 해 온 조완수 씨. 그동안 152명의 아이가 조 씨 품을 거쳤다. 지난달 29일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자신의 집에서 조 씨가 진석이의 재롱을 보며 즐거워하고 있다. 변영욱 기자
■ ‘위탁모 35년’ 조완수 씨의 삶

“여기 엄마, 이건 아가.”

김진석 군(4)이 자그마한 손가락으로 가리킨 빛바랜 흑백사진 속에는 긴 파마머리의 30대 여성이 아이를 업은 채 환하게 웃고 있다. 이 여성은 이제 주름과 흰머리, ‘할머니’라는 호칭이 더 어울리는 60대가 되었지만 아이들과 함께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지금도 아이들과 떨어져 있지 못한다.

○ 품을 거쳐 간 아이만 152명

사진 속 주인공인 조완수 씨(67·여)가 입양 전 아이들을 잠시 돌봐주는 위탁모 활동을 한 것은 30대 초반부터였다. 아이를 입양한 이웃 주민을 보면서 자신도 뭔가 아이들에게 사랑을 나눠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2남 2녀를 둔 조 씨는 막내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위탁모 생활을 시작했다. 홀트아동복지회에 문의를 해 아이를 데려온 것.

네 아이를 키운 ‘육아의 달인’이었지만 막상 집에 갓난아기가 생기니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낮밤이 바뀐 아기들을 상대하다가 밤을 홀딱 새우기 일쑤였고 잠깐 집 밖에 외출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밤에 아기를 업고 있다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짐 싸가지고 내일 보낼까’ 하는 생각도 머리를 스쳤다. 하지만 하루하루 변하는 아기의 방긋방긋 웃는 모습을 바라보면 어느새 마음은 녹아내렸다. 다행히 가족들도 이런 조 씨를 적극적으로 도왔다. 지금까지 35년간 조 씨의 품을 거쳐 아기들은 152명에 이른다.

○ “진석이가 나중에 날 찾아올까요?”

이렇게 많은 아이를 돌보고 떠나보내 온 조 씨이지만 그의 손을 꽉 붙들고 있는 진석이와의 ‘이별’에는 자신이 없는 눈치다. 생후 20일밖에 안 된 진석이를 데려다 3년여를 길러왔다.

그런 진석이가 10일 전 미국으로의 입양이 결정돼 3개월 뒤면 비행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간다. 조 씨는 진석이가 좋은 가정에 입양되길 원했지만 나서는 가정이 없어 지난해 퇴임을 한 뒤에도 진석이를 돌봐왔다. 한쪽 손은 손가락이 네 개밖에 없는 데다 웃을 때 살짝 입이 비뚤어지는 장애 때문이었다. ‘나이만 아니면 내가 입양을 할까’ 하는 생각도 했다고 한다.

“좋은 부모 만나게 돼 기쁘지만 ‘우리 강아지’가 그리워서 어떻게 살지 모르겠어요. 내가 생병이 날 것 같은데….”

조 씨는 “얘가 스무 살쯤 돼서 혹시라도 날 찾을지도 모르니 건강하게 살아야겠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