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성한]‘오바마 독트린’의 무풍지대 북한

  • 입력 2009년 4월 21일 20시 28분


북한이 5일 ‘장거리 로켓’을 발사한 지 열흘 만에 필자가 체험한 미국 워싱턴의 기류는 한마디로 ‘싸늘함’ 그 자체였다. 무엇보다 대북정책 검토작업이 채 끝나기도 전에 북한이 ‘도발행위’를 한 것에 대해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기분이 몹시 상해 있었다. 특히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특별대표가 3월 중국 베이징(北京)을 방문해 중국 당국을 통해 “북한과 양자회담을 할 테니 미사일을 쏘지 마라”는 메시지를 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강행한 데 대해 무척 자존심이 상한 눈치였다.

현재 오바마 행정부는 이른바 ‘불량국가(rogue states)’의 지도자들에게 직접 화해의 손길을 내밀고 진지한 협상과 관계 개선을 모색하는 ‘오바마 독트린’을 시험 중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란의 설날에 해당하는 3월 21일 노루즈를 맞이해 “나는 이란 국민과 지도자가 우리 앞에 새로운 미래, 즉 양국 국민 간의 교류가 다시 시작되고 동반관계와 교역을 위한 멋진 기회가 펼쳐질 미래가 있다는 점을 이해했으면 한다”는 내용의 화해 메시지를 던졌다. 이에 대해 이란의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하메네이는 “미국이 변하면 우리의 행동도 바뀔 것”이라고 화답했다.

이어 오바마 대통령은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서 “이란의 핵개발과 장거리 탄도미사일 개발을 중단시키는 일에 러시아가 협조할 경우 미국의 동유럽 미사일방어(MD) 체제도 필요하지 않다”고 했다. 미국의 복안은 이란 핵문제에 대한 러시아의 협조를 전제로 러시아의 골칫거리인 동유럽의 MD 설치 계획을 철회함으로써 ‘대타협’을 이끌어내겠다는 것이다.

미국, 이란 쿠바에 화해의 손길

백악관은 또 4월 13일 쿠바에 대해 외교관계를 단절한 지 반세기 만에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다. 150만 명에 달하는 쿠바계 미국인의 쿠바 내 친지 방문과 송금을 허용하고 미국 통신장비 및 통신 서비스업체들의 쿠바 진출을 허용한 것이다.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은 “미국과의 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화답했다. 4월 19일 폐막된 미주기구(OAS) 제5차 정상회의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과 앙숙관계였던 베네수엘라 우고 차베스 대통령과 만나 중남미와의 새로운 시대를 약속했다. 역사적으로 미국의 ‘뒷마당’으로 간주되는 중남미에 대해 ‘스마트 외교’를 펼쳐 반미주의를 차단함과 동시에 시시각각 파고드는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하겠다는 계산이다.

이렇듯 오바마 행정부는 미국의 외교적 일방주의를 인정하는 솔직한 화법과 적대국에 먼저 손을 내미는 파격적 행동으로 ‘오바마 독트린’을 시험 중이다. 그런데 미국이 가장 먼저 손을 내민 북한은 현재까지 오바마 독트린의 무풍지대로 남아 있다.

결국 미국이 북한에 던지는 메시지는 “북한도 이란이나 쿠바처럼 미국의 진의를 받아들이고 협력할 의사를 표명한다면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협상에 임할 것이다. 그러한 조건이 충족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순순히 조건을 충족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북한은 지금까지 미국이 군사력 사용을 위협한 1993년 제1차 북핵 위기, 그리고 김정일의 비자금으로 알려진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BDA) 계좌가 동결되었을 때를 제외하곤 자발적으로 회담에 나온 적이 없다. 오히려 북한은 핵시설 복구, 핵 재처리, 2차 핵실험 등을 하겠다고 위협하면서 긴장의 수위를 높여갈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은 오바마 독트린이 작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데 주력해야 한다. 남북대화나 6자회담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북한의 비핵화(非核化)다. 미-북 양자회담 개최를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북한이 핵시설 복구나 추가 도발행위를 하지 않고 미국과 함께 조용히 ‘냉각기’를 갖는 것이다. 이 점을 북한에 주지시켜야 한다. 물론 더 좋은 시나리오는 6자회담이 열리고 뒤이어 미-북 회담과 남북대화가 열리는 것이다.

북 로켓에 싸늘한 워싱턴 기류

하지만 이와 동시에 우리는 오바마 독트린이 ‘실패’할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 오바마 독트린을 시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일조하되 북한에 대해 정교하게 접근하지 않을 경우 북한을 핵 국가로 인정하는 우(愚)를 범할 수 있다는 점을 미국에 주지시켜야 한다. 외교적 해결방안(플랜A)이 실패할 경우의 대처방안(플랜B)도 마련해야 한다. 6자회담이 안 되면 북한을 제외하고 5자회담을 열 수 있다. 북한의 핵물질이나 미사일 확산 가능성을 철저히 차단하고 북한의 급소를 찾아내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전략과 전술을 총동원해야 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김성한 객원논설위원·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국제정치 ksunghan@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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