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동! 경제 탐정]하루에도 몇번씩 바뀌는 휴대전화 가격

  • 입력 2009년 3월 18일 03시 01분


대리점-판매점따라… 가입조건-기종따라… 엿가락 보조금

年 1369만명 이동고객 잡기 경쟁 치열… 타사 가입자 빼내올 때 더주기도

휴대전화를 바꾸려고 큰맘 먹고 판매점을 찾은 김모 씨.

평소 거리를 지날 땐 그토록 많이 보이던 ‘공짜 폰’ 광고가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던가.

“A사 가입자시죠? 지난주에 오지 그러셨어요. 공짜 폰이 그때는 많았는데. 이제는 끝났어요.”

판매원의 ‘얄미운’ 설명을 듣고 나니 의문점이 김 씨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도대체 왜 휴대전화 가격은 올랐다 내렸다 제멋대로인 걸까. 냉장고나 TV는 안 그런데….’



○ 휴대전화 가격은 엿장수 마음대로?

이동통신업체들의 설명을 들어보자.

휴대전화 가격이 ‘엿장수 마음대로’ 정해지는 이유는 다른 상품과 다른, 독특한 유통 및 판매 구조 때문이다.

휴대전화는 삼성전자, LG전자 등 제조업체로부터 소비자가 직접 구입하지 않는다.

SK텔레콤, KTF, LG텔레콤 등 이동통신업체가 구입한 뒤 1000여 곳의 대리점이나 수천 곳의 판매점을 통해 소비자에게 되파는 구조다.

이동통신업체는 이 과정에서 휴대전화를 원래 사 온 가격대로 팔지 않고 모델과 가입조건에 따라 보조금을 다르게 적용해 가격을 조절한다.

“이래서 가격 차가 많이 나는 거였군. 판매사원이 ‘이제 끝났다’고 했던 것은 보조금을 많이 주는 공짜 폰 제공 기간이 종료됐다는 얘기였네.”

물음표 하나를 해결한 김 씨는 판매사원이 들여다보던 깨알 같은 숫자가 잔뜩 적힌 표를 슬쩍 꺼내 봤다.

판매사원들이 흔히 ‘정책’(이동통신업체의 마케팅 정책이라는 의미)이라고 부르는 이 자료는 휴대전화 모델과 가입 조건에 따라 각각 얼마씩의 보조금을 지급하는지를 정리한 일종의 단가(單價)표였다.

단가표 내용을 예로 들면 A통신업체는 신규 가입자가 41만 원 상당의 LG전자 휴대전화를 살 때 51만 원의 보조금을 지급한다.

소비자는 공짜로 휴대전화를 가질 뿐만 아니라 10만원을 더 받을 수 있다(때로는 판매점이 10만 원을 가져간다).

반면 같은 가격의 다른 모델에는 보조금이 40만 원만 지급된다. 신규 가입자가 1만 원을 내야 살 수 있다.

위의 경우에서 신규 가입자가 아니라 기존 가입자가 휴대전화만 바꾸는 경우라면 보조금은 각각 27만 원, 30만 원으로 줄어든다. 거의 공짜였던 휴대전화 가격이 14만 원, 11만 원으로 각각 오르는 셈이다.

이동통신업체는 이런 단가표의 내용을 휴대전화 재고 현황, 마케팅 전략의 변화, 경쟁업체의 움직임에 따라 보통 일주일에 한 번씩, 많게는 하루에도 몇 차례씩 바꾼다.

○ 연어족과 메뚜기족은 누가 만드나

그렇다면 보조금은 어떤 원리로 늘어나고 줄어드는 걸까.

국내 휴대전화 유통시장은 1년에 1369만 명(2008년 기준)이 가입 통신회사를 옮기거나 새로 가입하는 대형 시장이다.

통신업체들은 이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대리점, 판매점에 지급하는 인센티브 등으로 연간 5조1700억 원을 쏟아 붓는다.

이 돈이 바로 가입자에게 보조금으로 지급되는 재원(財源)이다.

이동통신업체는 주로 업체 간 경쟁구도에 따라 이 돈을 움직인다.

주로 신규 가입자에 더 주고 기존 가입자에게 덜 주는 식으로 차별화한다. 경쟁업체의 가입자를 빼앗아 오는 데 보조금을 쓰기도 한다.

A사 가입자가 B사로 너무 많이 넘어갔다 싶으면 A사는 B사 가입자 대상의 보조금의 액수를 올리는 식이다.

최근에는 25세 미만의 젊은 고객에게 보조금을 더 주거나 경쟁업체로 갔다가 돌아오는 ‘연어족’에게 더 많은 보조금을 주는 새로운 행태도 등장했다.

이런 보조금 경쟁에 대해 통신사를 자주 바꾸는 ‘메뚜기족’에게만 유리하며 한 통신사를 꾸준히 이용하는 가입자에게는 불리하다는 지적이 많다.

이에 따라 정부는 보조금 지급 조건으로 2년 동안 가입회사를 바꾸지 못하게 묶어둘 수 있는 의무약정제를 1년 전 도입했다. 올해 2월 말 현재 의무약정 가입자는 전체 휴대전화 가입자 4598만 명 가운데 27.3%인 1255만여 명.

이에 따라 올해에도 나머지 약정고객 확보를 위한 통신업체들의 막바지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김 씨는 좀 더 ‘때’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조사 결과 나온 결론이다.

김용석 기자 nex@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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