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권희]자본의 質

  • 입력 2009년 3월 3일 02시 58분


작년 11월 미국의 초대형 은행인 씨티그룹의 주가가 재무구조 악화에 대한 우려로 하루 최고 26%, 일주일간 50% 폭락했다. 그러자 개인 최대주주였던 사우디아라비아의 왈리드 빈 탈랄 왕자는 지분을 4%에서 5%로 늘릴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구제금융이 또 필요해지면 추가로 투자하겠느냐’는 질문에 “크림 위의 체리다. 우리는 그걸 먹을 것이다”라고 자신만만하게 투자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주가 하락은 멈추지 않았다.

▷지난주 미국 정부가 자본 부족에 허덕이는 씨티그룹의 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해 국유화하기로 하자 왈리드 왕자도 보통주로의 전환을 신청했다. 우선주는 의결권이 없는 대신 배당 등 재산상 실익 차원에서 우선적 지위가 인정되는 주식이다. 왈리드 왕자는 보유한 우선주가 보통주로 전환되면 그동안 누려온 연간 11%의 배당은 꿈도 못 꾼다. 또 사우디에 앉아서 씨티그룹 경영진의 예방을 받는 호사(豪奢)를 포기해야 한다. 씨티그룹 우선주가 보통주로 전환되면 기존 보통주 주주들의 지분은 100%에서 무려 26%로 낮아진다. 국유화 발표 직후의 씨티그룹 주가 폭락은 이런 ‘가치 희석(稀釋)’이 반영된 결과다.

▷씨티그룹의 작년 말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은 15.6%로 높은 편이다. 안전자산이 대출 등 위험자산에 비해 어느 정도인가를 나타내는 기본자본비율(Tier1)도 당국의 권고치인 9%보다 높은 11.9%다. 자본의 양(量)으로는 글로벌은행 중 최고 수준이었다. 하지만 총자본 중 보통주로 조달한 자본 비중이 급감하는 등 자본의 질(質)이 나빠졌다. 이 와중에 부실자산이 늘어나고 주가가 떨어지면서 자본력이 약해져 투자자들의 불안감 해소에 실패하고 말았다.

▷기존 지표들이 자본의 질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다는 지적에 따라 미 재무부는 앞으로 유형자기자본(TCE)을 평가 기준으로 삼을 계획이다. 배당 부담이 있는 우선주는 빼고 보통주에 근거해 가치를 평가하는 방식이다. TCE 기준이 정해지면 주요 금융회사들도 여기에 맞춰 민간자본을 대거 유치해야 하는 의무를 진다. 이게 잘 안되면 공적자금이 투입될 것으로 전망돼 미국 금융업계의 지각변동이 계속 이어질 수 있다.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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