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박형주]수학자대회 유치, 꿈은 이루어진다

  • 입력 2009년 2월 19일 02시 58분


빨리 출발해야, 빨라야만 성공하는 시대라고 한다. 하지만 에디슨이나 아인슈타인 같은 대천재가 어린 시절에 보통 사람들보다 지적 성장이 늦었다는 얘기는 요즘 같은 시대에 처한 이들에게 희망을 주기도 한다. 늦게 출발한 한국의 성장은 그래서 더 보기에 좋다.

수학 분야에서도 한국은 늦게 출발하였지만 유례없는 성장을 해 왔다. 2007년 논문 수 기준으로 한국은 세계 12위에 해당한다. 지난 10년간 2배 이상의 성장을 보인 나라는 중국 한국 브라질 3개국뿐인데, 중국은 2002년 베이징 국제수학자대회의 효과, 브라질은 구소련 및 동유럽권 수학자의 대거 유입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그래서 한국 수학의 자생적 성장은 많은 이의 놀라움을 받는 대상이 되었다.

수학 연구에서의 성장뿐 아니라 우리의 미래인 어린 학생들의 활약도 인상적이다. 1959년에 창립되어 최고의 전통을 가진 국제수학올림피아드(IMO)에서 최근 3, 4위를 기록하는 한국의 약진은 그 자체로도 놀랍지만 한국 수학의 미래를 밝게 보는 하나의 근거가 된다. 수학 분야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은 이제까지 48명의 수상자를 배출했는데, 이 중 8명이 유년기에 IMO 수상자였던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이러한 성장의 모멘텀을 다음 단계로의 도약으로 이어갈 방법을 고심하던 한국 수학자들은 국제수학자대회(ICM)를 한국에 유치하는 노력을 시작했다. ICM은 112년으로 기초과학 분야에서 가장 오래됐으며 동반자를 포함해 6000여 명이 참가하는 최대 규모의 대회이며 가장 권위 있는 학술대회다. 1897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제1회 대회가 열린 뒤 4년마다 개최된다. 형식의 유사점 등으로 올림픽과 비교되기도 하는데 수학에서 ICM의 위상과 역할은 오히려 더하다. ICM 개막식에서 필즈상을 수여하는데 2002년 베이징에서는 장쩌민 당시 국가주석이, 2006년 마드리드에서는 카를로스 국왕이 개막식 3시간 내내 자리를 지키고 수여했다.

한국유치위원회는 한국 수학 연구의 놀라운 질적, 양적 성장을 증빙하는 유치제안서를 제출했다. 시설 등 인프라의 우수성과 함께 개발도상국에 미칠 긍정적 효과와 아시아권 수학 연구 및 교류의 폭발적 확대를 꿈과 희망의 구체적 모습으로 그렸다. 한국의 유치 주제는 ‘늦게 시작한 이들의 꿈과 희망’이다. 열악한 개도국의 연구 환경에서 놀랍게 빠른 성장을 이룬 한국의 ICM 유치가 후발국에 주게 될 꿈과 희망의 메시지를 표현했다. 자비로 ICM 참가가 어려운 1000명의 개도국 수학자를 한국 ICM에 초청하여 대학기숙사 등에 묵을 수 있도록 하는 기금 모금도 시작했다. 최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한국의 개도국 지원 확충을 당부한 일과도 일맥상통한다.

ICM 유치로 인한 한국 수학 연구 수준의 향상과 더불어 젊은 인재가 기초과학 분야에서 꿈을 발견하고 진입하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점도 중요하다. 우려되는 이공계 기피 현상도 청소년에게 역할모델을 보여주고 뛰어난 성취에 진지하게 감사하는 문화적 토양이 형성되면서 풀 수 있는 문제인데, 그래서 한국 ICM은 시의성이 있다.

브라질 캐나다와 치열한 유치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다음 달 23∼26일에 국제수학연맹의 3인 실사단이 한국을 찾는다. 한국유치위원회는 시설의 우수성 증빙과 학문 존중의 문화적 토양 증빙을 목표로 실사를 준비하고 있다. 국민을 비롯해 정부의 관심과 지원 속에서 한국의 문화적 성숙도가 실사단에 전달되기를 고대한다.

박형주 고등과학원 교수 2014 국제수학자대회 유치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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