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하종대]한국의 정치혼란 ‘타산지석’ 삼는 중국

  • 입력 2009년 1월 30일 03시 01분


“한국은 짧은 기간에 민주주의 정치제도를 완성한 나라지만 중국이 본받을 나라는 아닙니다.”

사회주의 정치이론과 중국 정치개혁의 방향을 30년 가까이 연구한 중국의 한 중견 교수가 지난해 말 기자에게 들려준 말이다.

그는 2007년 10월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중국 공산당 제17차 전국대표대회에서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이 주창한 ‘과학발전관’을 만드는 데 참여한 인사이기도 하다.

그는 중국의 당면 과제가 정치개혁이지만 지도부가 어느 방향으로 개혁을 할 것인지 아직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후 주석이 17차 당 대회에서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길을 걷겠다고 천명하면서도 이 기치의 ‘색깔’에 대해 설명을 하지 않은 이유도 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중국 학자들은 현재 미국식 정치제도를 선호하는 자유주의파와 서구 유럽식을 추구하는 공동체주의, 계획경제로 돌아가자는 보수파 등 세 부류로 갈려 논쟁을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대표적인 참고 국가가 한국과 대만이다. 양국은 미국의 정치제도를 도입해 민주국가로 변신했고 최근 두 차례의 여야 정권교체를 이룩해 민주주의 단계로 진입했다.

중국 학자들은 한국과 대만이 짧은 기간에 민주주의를 실현했다는 데 이의를 달지는 않지만 양국을 민주정치의 모범 사례로 손꼽기는커녕 되레 민주화의 역기능이 많이 나타나는 나라로 꼽는다.

민주주의 형식만 배웠지 민주제도의 실시 배경과 원리를 잘 습득하지 못해 결국 사회 진보를 더디게 하고 혼란만 부추기는 결과를 낳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꼽히는 게 ‘다수결 원칙’이다. 다수결 원칙은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이 먼저 토론과 협상을 통해 타협을 시도하되 타협이 불가능할 때 표결로 하자는 것인데 한국은 ‘토론과 협상 없는 표결’이나 토론과 협상을 거친 뒤에도 표결을 거부하는 이상한 현상이 정치권은 물론 사회 각계에 퍼져 있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현상이라는 것.

민주화 과정에서 정부의 공권력이 약화되고 개인과 시민단체의 힘이 지나치게 비대해진 것도 사회발전을 더디게 하는 요인이라고 이들은 지적했다.

이 같은 지적이 100% 옳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민주국가임을 자부하는 한국이 민주화를 앞둔 나라의 귀감(龜鑑)이 아니라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하종대 베이징 특파원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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