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성원]‘약체 정권’이 살아가는 법

  • 입력 2009년 1월 21일 20시 11분


1967년 어느 날 현대건설의 태국 빠따니 나라티왓 고속도로 건설공사 현장 사무실. 15명가량의 폭도들이 들이닥쳐 칼과 각목을 휘두르며 금고를 내놓을 것을 요구했다. 모든 직원이 놀라서 달아났지만, 입사 1년차 사원 이명박은 금고를 끌어안고 쏟아지는 발길질 속에서 경찰이 들이닥칠 때까지 금고를 지켜냈다. ‘현대 신화’는 고(故) 정주영 회장의 기업가정신과 돌파력뿐 아니라 이런 구성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김영삼 정권 초 실세그룹의 한 명이던 K 씨는 “우리 ‘영감’을 대통령 만들고, 개혁 작업에 내 정치생명을 던졌으니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말하곤 했다. 김 전 대통령이 안가(安家) 철거, 하나회 해체, 공직자 재산 등록, 금융실명제 실시 같은 개혁을 숨 가쁘게 전개할 때 기득권층의 저항도 만만찮았지만 “너, 이거 받을래, 나하고 같이 죽을래”라며 다그치는 정권 핵심부의 ‘결기’가 이를 돌파했다.

김대중 정권 초기의 집권그룹 중에는 사람을 만나 대화하다가 국정운용에 참고가 될 만한 얘기가 나오면 수첩을 꺼내 메모하는 인사들이 종종 눈에 띄었고, 이들에게 ‘선생님 일은 내 일’ 같았다. ‘노무현의 남자들’은 누가 귀에 거슬리는 얘기를 한다 싶으면 ‘수구 꼴통’이라며 대거리를 하다가 나중에는 아예 접촉을 끊고 그들만의 개혁 타령에 빠졌다. 그래서 민심은 더 멀어져 갔지만 그들의 결속력만은 단단했다.

그럼 이 정권에서는? 남들이 뭐라 하는지 의견을 널리 구하는 사람도, 의견이 다르다고 화를 내거나 윽박지르는 사람도 없다. 지난해 4월 총선을 앞두고 소위 측근이라는 사람들은 청와대에 남아 대통령을 보좌하기보다는 금배지를 달기 위해 여의도로 튀기 바빴다. 세종로 사거리가 ‘미친 소, 미친 정권 타도’ 구호와 쇠파이프에 마비되고, 연말연초 국회에서 경제 살리기에 필요한 법안들이 폭력을 앞세운 야당의 회의실 점거로 상정조차 안 돼도 대통령의 측근이든, ‘친이(親李)계’ 의원이든 목숨 걸고 상황을 돌파해 보려는 사람이 없었다.

이 정부 사람들의 충성심과 응집력이 유독 떨어져 보이는 것은 이 대통령에게 전임자들처럼 지역이나 이념 기반도, 오랜 동지와 가신 그룹도 별로 없다는 점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워룸’까지 마련해 추진 중인 경제 살리기가 성공하려면 법안 통과에서 집행에 이르기까지 무한책임을 지겠다며 자신을 던질 수 있는 집권주체 세력이 필요하다.

이 대통령이 국정책임 세력을 확대하기 위해 취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3가지다.

첫째, 몇 명 되지도 않는 측근에 과도하게 매달리지 말고 인연 출신 계파 당적을 뛰어넘어 최고의 능력을 갖춘 인재들로 ‘드림팀’을 짜는 것이다. 1930년대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사회주의자 해리 홉킨스를 특별보좌관으로, 공화당 소속 해럴드 이크스를 내무장관으로 기용해 뉴딜정책의 기획과 집행을 각각 맡겼다. 둘째, 일일 점호하듯 공무원들을 모아놓고 ‘환율 챙기라’ ‘자금집행 제대로 하라’고 훈시하는 일은 최소화하고 최강의 멤버들이 전선(戰線)에서 역량을 극대화할 수 있게끔 전적으로 믿고 맡기는 것이다. 셋째, 견해가 다른 사람들과도 자주 만나 대화함으로써 주요 정책에 대한 반대를 중립으로, 중립을 지지로 바꿔내는 일이다.

그렇게만 해도 훨씬 안정적인 기반 위에서 국정을 주도할 수 있을 것이다.

박성원 논설위원 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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