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준 칼럼]與圈모두 변해야 함께 산다

  • 입력 2009년 1월 15일 03시 01분


동물 다큐멘터리 전문채널 애니멀 플래닛이 새끼표범의 사냥 실패 장면을 보여줬다. 새끼표범은 먹잇감을 향해 돌진했지만 오히려 과속하는 바람에 놓쳐버리고 만다. 의욕과 속도는 충분했으나 전략 없이 덤빈 것이 패인이다.

작년 12월 한나라당 지도부는 입법의 속도전(戰)을 선언하고 예산부수법안, 경제·민생 살리기 법안, 위헌 해소 법안, 사회개혁 법안 등 85개 법안의 연내 처리를 다짐했다. 거두절미하고 결과만 보면 목표 달성률은 제로였다.

새해 1월 8일 여야는 56개 법안을 통과시켰으나 한나라당이 속도전으로 하겠다던 역점 법안은 모두 제외됐다. 13일에도 66개 법안이 처리됐지만 역시 쟁점법안은 빠졌다. 그런데도 여야는 1월 임시국회를 사실상 개점휴업할 태세다. 한나라당의 입법 속도전은 이토록 허망하게 실속(失速)했지만 누가 어떤 반성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여당 대표와 원내대표가 정치력을 발휘했더라면 이 정도의 법안 처리는 (국회를 무법천지로 만들지 않고도) 작년에 다 할 수 있었다. 민생법안도 통과시킬 수 있었다”고 일침을 놓는다. “정치력이 있다면 작년 12월에 쟁점법안은 제쳐놓고 민생법안부터 한다고 했어야지”라며 전략 없는 속도전을 나무랐다.

초선의원 오바마와 통했던 부시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한나라당이 한 지붕 두 가족인데 대통령은 왜 박근혜 전 대표를 안 만나나. MB악법, 야당 탄압 운운하는 야당 측도 만나서 그게 아니다, 나라가 이렇게 어려우니 도와 달라고 성심껏 설득해야지. 미국 대통령은 야당 접촉 일정이 많다”고 쓴소리를 했다.

미국 대통령과 백악관 참모들은 주요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야당 의원들을 설득하고 협상하는 게 체질화돼 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닷새 뒤면 백악관의 새 주인이 될 버락 오바마 당선인이 초선 상원의원 신분일 때 전화하거나 초청해 대화를 나눴다.

오바마는 상원의원 당선 뒤 부시 대통령의 축하 전화를 받은 일, 다른 상원의원들과 백악관 오찬모임에 간 일 등을 저서 ‘담대한 희망’에 꽤 자세히 썼다. “두 차례의 접촉을 통해 나는 부시 대통령이 호감 가는 인물이란 점을 알게 됐다.” “대통령은 내 손을 잡고 흔들면서 말했다. 오바마! 이리 와서 로라와 인사해요. 로라, 오바마를 기억하지? 선거 당일 밤 TV에서 함께 봤잖아. 멋진 가족이었지.” “대통령과 중미자유무역협정(CAFTA) 비준문제에 대해 협의했다. 대통령은 내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은 뒤 내 지적에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내가 CAFTA 비준에 찬성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물론 우리나라 대통령과 야당 정치인 사이에 이런 소통이 가능하려면 정치문화가 쌍방향에서 크게 바뀌어야 한다. 야당 대표가 청와대 초청을 묵살해버리고는 대단한 거사나 한 듯이 행동하는 것은 안타깝다. 하지만 대통령이 리더십과 참을성을 발휘해 소통과 타협의 정치 토양을 만들어나갈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의 분열은 이 정권의 엔진이 깨졌음을 뜻한다. 이런 상태로는 대통령의 초심인 ‘섬기는 정부’의 성공도, 정권 교체의 소명(召命)인 경제 살리기와 국가 정체성 복원도, 정권의 지속도 쉽지 않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 전 대표는 함께 시험받고 있다. 두 사람이 과연 나라를 위해 소아(小我)를 버릴 도량과 결단력이 있는지 국민은 지켜보고 있다. 여당 분파를 방치하고는 진정한 국가지도자로 성공할 수 없다. 이 대통령은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책무를 다하기 위한 선택을 해야 한다. 필요의 정치가 아니라 신뢰의 정치가 답이다. 박 전 대표도 비주류 의식에 계속 빠져 있으면 주류가 되는 길을 스스로 좁히게 될 것임을 원려(遠慮)해야 한다.

국민은 心眼으로 李-朴지켜본다

집권세력이 옹졸한 내분으로 정국 혼란을 자초하고 민생을 살려내지 못한 채 임기 후반을 맞는다면 국민은 노무현, 이명박으로 이어진 지도자 선택 실패에 좌절할 것이고 기성 정치 및 정치인에 대한 냉소주의는 더욱 깊어질 것이다.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는 윈윈 관계일 수도 있고, 함께 패하는 관계일 수도 있다.

정치건 경제건 결과가 중요하다. 그렇지만 선의(善意)와 진정성이 결과의 질(質)을 바꿀 수 있다. 정치가 아무리 타락해도 동물의 세계가 아니라면 참된 배려, 양보, 공존(共存)의 자세가 성공을 위한 또 하나의 전략이 되지 않겠는가. 국민은 모르는 것 같아도 심안(心眼)으로 정치를 보고 있다.

배인준 논설주간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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