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석 기자의 digi談]라이벌은 싸워야 맛인데…

  • 입력 2009년 1월 6일 03시 05분


불황에 전의 상실 씁쓸해

세계 정보기술(IT) 업계에서 작년 1월엔 있었지만, 올해 1월엔 없는 것은 무엇일까요.

정답은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인 빌 게이츠와 애플의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잡스의 연설입니다.

두 사람은 거의 매년 1월 각각 세계적으로 유명한 IT 전시회인 소비가전전시회(CES)와 맥월드 연설로 화제를 만들어 냈습니다.

쌍벽을 이룬 두 전시회의 성패에 따라 두 사람 사이의 희비가 엇갈리기도 했죠.

서로에게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만큼 독설을 주고받기도 했습니다.

잡스 CEO는 1996년 미국의 유명한 방송프로그램에 출연해 “MS가 성공하든 말든 상관없지만 (MS의) 3류 제품을 사람들이 산다는 것에 화가 난다”고 말했습니다. 2006년엔 “MS는 50억 달러를 연구개발(R&D)에 쓰지만 구글과 애플을 베끼기에 바쁘다”고 비꼬았죠.

게이츠 전 회장은 1989년 애플이 내놓은 ‘넥스트 컴퓨터’에 대해 “이 컴퓨터가 성공하면 난 혼란스러워질 것”이라며 깎아내렸습니다. 2005년에는 독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애플 아이팟의 성공이 장기적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는 지난해 1월 CES 연설을 끝으로 치열한 전쟁터를 떠났습니다. 잡스 CEO 역시 올해 1월 맥월드에서 기조연설을 하지 않는다며 무대 뒤로 물러날 모양입니다.

두 사람의 퇴장은 세상이 달라지고 있음을 실감케 합니다.

구글이 인재를 스카우트해 가자 “(구글) 사장을 죽여 버리겠다”고 말한 ‘독설의 대가’ 스티브 발머가 게이츠의 뒤를 이었지만 왠지 김이 빠져 보입니다.

독설을 주고받을 라이벌이 있다는 것은 창조적 파괴를 위한 치열한 경쟁이 있다는 얘기도 됩니다.

그런데 지금은 두 회사가 서로 주고받는 날선 공방 대신 두 회사를 둘러싼 시장의 경영난 루머가 관심사입니다.

MS는 연초부터 전체 직원 9만1000명 가운데 약 16%인 1만5000명을 정리해고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승승장구하던 애플도 잡스 CEO의 건강이상설로 주가(株價)가 떨어지는 시련을 겪었죠.

한국 기업 중에도 삼성전자와 LG전자의 경쟁의식은 대단합니다. 하지만 최근 이들 사이의 신경전도 많이 무뎌진 것 같습니다. 어찌 보면 모두들 어려운 시절을 버텨내느라 다른 곳에 마음을 쏟을 여력이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

nex@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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