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학점 부풀리기, 결국 학생들이 피해자다

  • 입력 2008년 12월 5일 03시 00분


정부의 대학정보 공개 사이트인 ‘대학알리미’를 통해 드러난 ‘학점 부풀리기’ 실태는 예상한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 지난해 1학기 전공과목에서 A학점을 받은 수강생 비율은 서울대가 45.4%, 고려대 37.8%, 연세대 41.2%, 이화여대 36.6%였다. 그러나 일부 대학에서는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받아야 할 영예의 A학점이 열에 일고여덟이 받는 학점으로 전락했다.

대학들이 학업성적을 상대평가하는 것은 학생들 간에 선의의 경쟁을 유도하기 위함이다. 평가 과정이 힘들더라도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되는 대학의 책무다. 열심히 공부하는 학내 풍토는 학생과 대학 모두를 위한 것이다. 대학의 힘이 곧 국가 역량인 시대를 맞아 국가경쟁력과도 직결돼 있다. 그러나 우리 대학들은 A, B학점 비율을 전체의 70%까지 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너무 안이하고 느슨한 책정이지만 이것조차 지켜지지 않고 A학점을 남발하고 있는 것이다.

극심한 취업난 속에서 낮은 학점이 제자들의 취업에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교수들의 심정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학생들 사이엔 ‘재수강’이라는 편법으로 낮은 학점을 높이는 ‘학점 세탁’도 성행하고 있다. 사회 현실과의 적당한 타협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학점 거품은 대학의 신뢰에 상처를 내고 대학 학력의 가치를 하락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학업 지도에 깐깐한 교수보다는 학점 잘 주는 교수에게 수강생이 몰릴 수밖에 없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식이다. 기업은 대학 성적을 더는 믿지 않는다. 피해자는 결국 학생과 대학이다. 대학의 존립 기반을 허무는 학점 거품은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악순환의 고리는 교수들이 먼저 끊어야 한다. 대학은 학점 기준을 엄격하게 세워 학업성취도가 높은 학생이 합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고교의 내신 부풀리기에 ‘믿을 수 없다’고 나무라던 대학들은 똑같은 잘못을 범하고 있음을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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