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변희재]IP세대, 희망의 마지막 승부

  • 입력 2008년 10월 29일 03시 02분


문민정부 출범, 서태지 등장, PC통신 대중화의 원년인 1992년 이후 성인이 되어 창의력과 글로벌 감각을 익힌 IP(In-dependent Producer·독립적 생산자)세대의 잠재력과 역할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특히 지난 2년간 젊은 세대를 사회적 무능력자로 몰아붙인 진보좌파 측의 88만원세대론이 광범위하게 유포된 탓에 낯설어 보였던 IP세대론이다.

386세대와 비교해 보면 IP세대의 사회 진출이 얼마나 더딘지 쉽게 알 수 있다. 386세대는 2000년 총선 때 30대 중후반 나이의 운동권 총학생회 회장 출신들이 중심이 되어 대거 정계에 진출했다. 비슷한 시기에 네이버의 이해진, 다음의 이재웅 씨 등이 포털과 같은 인터넷기업을 성장시키며 경제영역에서도 중심에 들어섰다. 386세대의 최대 텃밭이라 할 수 있는 학계와 언론계는 이미 운동권 시절부터 장악했다.

반면에 IP세대는 이미 30대를 넘어섰지만 정계 경제계 문화계 학계 언론계를 통틀어 IP세대를 상징할 수 있는 대중적 인물을 찾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이번 촛불시위 때 드러났듯이 IP세대는 386 운동가들이 다 짜놓은 판에 머릿수를 채워주는 역할에 그치고 말았다. 386세대가 좌지우지하는 학계와 언론계는 교묘하게 “이제 소가 되어 죽을 거예요”라고 울어대며 촛불과 짱돌을 든 젊은 세대가 미래의 희망이라 부추겼다.

넘어야 할 벽은 기득권 386세대

IP세대가 넘어서야 할 벽은 다름 아닌 기득권 386세대다. 그들은 정치판의 고질적 병폐인 패거리주의, 보스정치, 지역주의에 편승했다. 또한 포털업체의 386세대 사장들은 인터넷경제를 과거 재벌이 독주할 때보다 더 심각한 수준으로 독점화했다.

이런 구도에서 IP세대가 창의력과 글로벌 네트워크 능력을 발휘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했다. 학계와 언론계를 장악한 386세대는 이런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지 않고 오히려 “세상을 전복한 386세대가 희망 없는 젊은 세대를 영원히 이끌어 주겠다”며 세대 지배체제를 공고히 하는 나팔수 역할만을 해 왔다.

IP세대의 성장은 개개인의 능력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정치판의 패거리주의 개혁, 인터넷의 독과점 해소, 언론 및 문화영역의 시장 선진화 등 새로운 흐름이 형성되어야 한다. 또한 더욱 다양한 해외기업과 문화를 받아들여 이들과 교류하면서 또 다른 영역의 길을 개척해 나가야 한다. 기득권 386세대는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언론 탄압, 인터넷 통제, 신자유주의 등 온갖 명분을 들이대며 결사적으로 막고 있다.

최근 15세에서 34세까지의 청년 3000만 명 중에 100만 명이 취업과 학업을 다 포기한 무취업자라는 통계 결과가 발표되었다. 또한 세계 금융위기의 최대 피해자는 무취업, 무주택자인 젊은 세대가 될 것이라는 경고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런 분위기를 틈타 386 운동가들은 IP세대론을 소수의 출세한(?) 젊은이들만의 담론으로 축소하고, 절대다수의 젊은 세대에 절망의 88만원세대론을 다시 주입하며 제2의 촛불시위에 동원할 준비를 마쳤다.

그러나 청년 창업가와 무취업자들의 간극은 그리 크지 않다. 실제로 1971년생 이하 기업가들의 조직인 실크로드CEO포럼 회원 중 상당수가 청년 무취업자의 경험을 갖고 있다. 오직 정규직에만 취업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탓에 무려 200여 곳의 기업에 취업원서를 넣었다가 실패한 후 모형 조립이라는 자신의 취미를 살려 이제는 연 10억 원대의 수출을 하는 자동차 모형회사를 설립한 IP세대 기업인도 있다. 문제는 이러한 IP세대 공통의 잠재력이 발휘될 수 있도록 사회 흐름 자체를 바꿔내야 한다는 것이다.

“단 한 번만이라도 이겨보자”

신세대론이 한창이었던 1994년, 농구를 소재로 한 장동건 주연의 드라마 ‘마지막 승부’의 주인공들은 “단 한 번만이라도 이겨보자. 단 한 번이라도 좋다”고 외쳤다. 그들은 드라마상에서 결국 이겼다. 그러나 현실의 IP세대는 그 이후 14년 내내 기득권 386세대에 치이고 밟히고 이용당하며 늘 패배만을 경험했다.

IP세대는 물론이고 다수의 서민형 386세대까지 모두가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경제위기의 시대, 창업과 해외교류라는 깃발을 든 IP세대들의 마지막 승부가 대한민국의 유일한 희망이다.

변희재 객원논설위원·실크로드CEO포럼 회장 pyein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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