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백성기]학교냐, 학원이냐?

  • 입력 2008년 9월 24일 03시 00분


사교육 시장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나 2월의 통계청 발표 자료에 따르면 2007년 한 해 동안 전국 초중고교생이 지출한 사교육비가 20조400억 원 정도라고 한다. 이는 같은 해 우리나라 175개 4년제 대학이 지출한 총예산 19조3000억 원을 넘어서는 것이다. 최근 보도에 의하면 지난 1년간 학원, 학습지, 홈스쿨, 온라인교육 등 사교육기관의 매출액이 30조 원을 넘어서면서 관련 주식들이 급등세를 보이고 외국 자본도 대거 유입돼 사교육 시장은 더 빠른 속도로 성장할 것이라고 한다. 이런 추세라면 사교육 시장 규모가 올해 전체 교육예산 35조5000억 원을 뛰어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지난해부터 대학마다 특목고에 대한 특별전형이 확대되면서 특목고 입시학원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게다가 서울시의 국제중학교 설립 소식까지 더해짐으로써 이제는 초등학생들도 입시학원으로 내몰리게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학원에 들어가기 위해 학원에 다녀야 하는 것이 우리 교육의 현실이다.

추락을 거듭하고 있는 공교육을 바로잡기 위해 정권이나 장관이 바뀔 때마다 끊임없이 새로운 교육정책이 시도되었으나 오히려 사교육만 부풀리는 결과로 끝나고 말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일각의 주장대로 커질 대로 커진 사교육 시장의 현실을 인정하고 공교육과 사교육이 상호보완적으로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까. 대학 입시가 자율화돼 대학별로 다양한 방법으로 학생들을 뽑게 되면 사정이 나아질까. 그렇지 않다는 것이 입시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오락가락 교육정책 사교육 조장

문제의 근원은 “대학 입시에 어느 쪽이 중요한가. 학교냐, 학원이냐”는 질문에 수험생 학부모 교사는 물론이고 대학입시 담당자마저도 한목소리로 “학교는 아니다”라고 하는 데 있다. 모든 학생이 대학 입시에 응시하기 위해 고교 2년 혹은 3년간의 성적표를 제출하지만 대학에서는 이를 참고자료로만 활용할 뿐이다. 왜냐하면 대학이 신입생 선발에서 필요로 하는 정보가 담겨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모든 대학은 예외 없이 전국을 대상으로 학생을 선발한다. 따라서 대학은 수험생이 어떤 과목에서 전체 수험생 중 어느 정도의 성적을 냈는지를 알아야 한다. 수험생 또한 과목별로 자신이 어느 수준이고, 이를 근거로 어느 학과를 선택하고 어느 정도의 대학에 응시가 가능한지를 알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이를 알려주지 않는다. 대학에 제출되는 고교 성적표에도 이를 가늠할 수 있는 정보가 담겨 있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과 학부모는 학교 공부는 도외시하고 비교적 정확하게 자신의 학업성취도와 응시 가능 대학이나 학과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학원을 찾게 되는 것이다.

공교육에 종사하는 40만 명의 교사가 현장에서 쏟은 땀과 노력의 흔적이라 할 수 있는 고교 성적표가 대학 입시에는 별반 소용이 없는 상황이다 보니 대학은 할 수 없이 수능 성적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이마저도 점차 변별력을 잃어가고 있다.

사실 상당수의 대학은 통합논술 혹은 심층면접이라는 이름의 선발 방법을 활용하고 있기에 실질적으로는 다시 본고사를 도입한 것과 다름없다. 대학 자율화의 큰 흐름 속에서 대학별 본고사의 부활이 눈앞의 현실로 닥친 상황에서 사교육 시장은 더욱 세분화, 전문화돼 또 한 번 크게 팽창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전국단위 학력평가 정기시행을

이러한 흐름을 바꿔 점차 공교육을 살려내고 사교육을 잠재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먼저 고교 성적표에 학생 본인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대학이 필요로 하는 정보가 담겨 대학 입시 과정에서 의미있게 활용될 수 있어야 한다. 전국 단위 학력평가가 정기적으로 이루어지고 그 결과가 상세하게 본인 학부모 교사 등 관련자에게 통보되고 축적된 학력 변동사항이 한 줄도 가감 없이 대학에 제출되어야 한다.

물론 일부의 우려처럼 학교 간, 교사 간 서열이 드러나서 당장은 불이익을 보는 학생과 학부모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학 입시에 학교 성적표가 실질적으로 활용되면 점차 학교와 교사의 권위가 회복되고 교사와 학생 간, 그리고 고교와 대학 간의 신뢰 회복이 가능해짐으로써 확대일로의 사교육 시장을 잠재울 수 있게 될 것이다. 앞서 제기한 질문에 우리 모두가 “우선은 학교 공부가 중요하다”고 대답할 수 있도록 하자는 얘기다.

백성기 객원논설위원·포스텍 총장 sgbaik@postech.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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