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문재완]신문-방송 겸영은 변화의 시작

  • 입력 2008년 9월 8일 02시 59분


대통령 선거가 한창인 미국에선 변화의 열기가 뜨겁다. ‘변화’는 버락 오바마 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상징이다. 이 단어 하나로 그는 힐러리 클린턴을 누르고 대통령 후보가 됐다. 변화의 바람 앞에 공화당은 흔들렸다. 그러나 며칠 전 끝난 공화당의 전당대회는 더 큰 바람의 진원지가 되었다. 72세의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 역시 “변화가 오고 있다”고 외쳤다. 세라 페일린 부통령 후보는 그들이 해야 할 일을 ‘변화’라고 단언한다.

다양한 프로그램 접할 기회

우리 사정을 보면 가슴이 답답하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6개월이 더 지났지만 변화의 기운은 좀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로 몇 달을 허비하고 요즘은 ‘9월 위기설’ 처리에 정신이 없다. 방송통신위원회가 4일 ‘방송통신 선진화를 통한 신(新)성장 동력과 일자리 창출방안’을 발표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여기에는 공무원 특유의 장밋빛 청사진도 있다. 하지만 방송과 통신의 융합 환경을 맞아 새로운 그림을 그리려는 시도가 좋다. 이것이 변화의 시작이다. 방송서비스 시장 선진화를 위하여 규제를 푼다고 한다. 지상파 방송과 보도·종합편성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에 대한 대기업 진입제한 기준을 상향조정하고, 보도·종합편성 방송채널에서 신문과 방송의 겸영도 허용하겠다고 한다. 법으로 쳐 놓은 울타리 안에서 안주하던 방송 영역에 경쟁의 바람이 불고 소비자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이런 것이 변화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대기업에 대한 특혜라는 지적도, 일부 신문사의 독점적 시장지배력이 더욱 확대된다는 비판도, 방송의 공공성 훼손에 대한 우려도 있다. 정부는 반대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예컨대 방송의 공공성은 변화를 추구하면서도 결코 놓지 말아야 할 가치다. 하지만 동일한 가치를 추구하더라도 다양한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최적의 방법은 환경에 따라 다르다. 그래서 변화가 필요하다. 방송과 통신이 융합하고 새로운 미디어가 속속 출현하는 다매체 환경에서는 공공성 확보의 방법도 달라져야 한다.

반대론 중에는 기득권자의 변화에 대한 저항도 있다. 이는 무시해야 한다. 그동안 방송 분야에서 소유 구조의 변화는 논의 자체가 금기시됐다. 신문과 방송의 겸영 금지는 1980년 언론통폐합이라는 초헌법적 조치, 그해 말 언론기본법이라는 악법에 의해 법제화됐는데 과거사 청산을 외치는 사람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입을 다문다. 신문의 구독자 급감은 세계적 현상이고, 신문의 영향력이 방송이나 인터넷 포털보다 낮아졌다는 조사 결과가 나와도 신문의 독점적 시장지배력을 이유로 겸영이 안 된다고 주장한다.

하나의 정보를 가공해 여러 플랫폼을 이용하여 공급하는 소위 원소스 멀티유즈(one-source multi-use)는 정보화 사회의 기본이고, 신문과 방송의 겸영을 완전히 금지하는 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한국이 거의 유일하지만 겸영 해제를 특혜라고 한다. 방송사는 신문을 발행할 수 있지만 신문사는 방송사의 주식을 한 주도 소유할 수 없는 불평등 구조인데도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관심조차 두지 않는다.

공영방송 개혁으로 이어지길

방통위의 업무보고는 금기의 문을 과감하게 열었다는 점에서 큰 변화다. 이런 변화는 계속해야 한다. 신문과 방송의 겸영은 지상파 수준으로 허용할 필요가 있다. 방송 영역도 다른 분야처럼 신규 투자와 인수합병이 늘어나야 한다. 방송의 공공성 확보가 걱정이라면, 제대로 된 공영방송사를 만들어야 한다. 민영방송과 똑같이 광고로 운영하고 거의 같은 비율로 공익성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도 공영방송이라고 목소리 높인다고 공공성이 확보되지는 않는다. 변화가 공영방송 개혁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문재완 한국외국어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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