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반대자 “NO” 목소리에 귀를 열어라

  • 입력 2008년 9월 6일 02시 58분


HBR 논문 ‘크게 실패하는 7가지 방법’ 화제

《경영학에서 성공 사례에 대한 연구는 수없이 많다. 그러나 실패 연구는 매우 드물다. 실패를 감추기에 급급한 기업이 많아 자료 확보가 어렵기 때문이다. 실패와 관련해 정리된 이론이 부족하다 보니 여전히 많은 기업은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

하지만 빈약한 실패 연구를 보충해 줄 새로운 논문이 최근 발표돼 주목받고 있다. 세계 최고 경영저널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9월호에 실린 ‘크게 실패하는 7가지 방법’이란 제목의 논문이 그것이다. 논문 저자들은 지난 25년간 최악의 실수 750건을 분석했다. 이들은 시너지에 대한 과신, 막무가내식 주력 사업 고수, 성급한 합병 등 7가지 요인 탓에 재앙이 발생했다고 강조했다. 특히 연구팀은 최악의 실패 가운데 거의 절반 가까이는 반대자 의견을 경청하는 시스템 등을 잘 갖췄더라면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논문은 동아비즈니스리뷰(DBR) 17호(9월 15일자)에 실려 있다.

○ 실패하는 7가지 방법

초대형 재앙을 불러오는 주 요인 중 하나로 ‘시너지에 대한 환상’이 꼽혔다. 많은 기업이 다른 기업을 인수하면 기막힌 시너지가 나올 것으로 예상하지만, 상당수는 신기루에 불과하다는 게 연구팀의 분석이다.

1999년 신체장애 보험회사 우넘과 프로비던트가 합병을 단행했다. 회사 경영진은 영업 인력들이 서로의 상품을 함께 팔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두 회사 영업 직원들은 상대 회사의 상품을 잘 알지 못했고 협력할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했다. 결국 우넘은 지난해 합병을 무효화했다.

성급한 합병도 실패의 주 요인으로 꼽혔다. 논문 저자인 폴 캐럴 콘텍스트 매거진 창립자는 “성숙한 산업에서 합병으로 덩치를 키우려는 기업이 많지만, 상황이 더 악화되기 전에 회사를 팔아치워 현금을 챙기는 게 현명한 일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례로 유통업체인 아메스백화점은 월마트와의 경쟁을 위해 제대로 따져 보지도 않고 기업 인수에 대규모 자금을 쏟아 부었다가 끝내 해체되고 말았다.

연구팀은 합병을 할 경우 △상대 기업의 문제점이 함께 딸려오는 경우가 많고 △조직의 복잡성 증대로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으며 △인수한 회사의 고객들을 유지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또 거의 모든 종류의 급격한 몸집 불리기도 기업의 생존 확률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지적됐다. 일부 국내 기업이 인수합병(M&A) 경쟁에서 승리했지만 과도한 비용 지출로 어려움을 겪는 이른바 ‘승자의 저주’ 현상을 경험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연구 결과는 상당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지나치게 위험한 재무 설계도 회사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다. 1990년대 그린트리파이낸셜은 이동식 주택에 대해 3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을 해줘 부를 축적했다. 하지만 문제는 이동식 주택의 수명이 10년에 불과하다는 것. 주택 가치가 매년 급락하면서 집 주인들은 대출금을 연체하기 시작했고 이 회사를 사들인 콘세코는 결국 30억 달러의 손실을 보며 2002년 파산했다.

연구팀은 시장 변화를 무시한 채 자사의 주력사업에만 매달려도 실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스트먼 코닥은 디지털카메라의 공격에 소극적으로 대처해 지난 10년간 주가가 75%나 하락했다.

논문 저자들은 제너럴일렉트릭(GE)의 성장에 기여했던 ‘인접 시장 전략’도 잘못 사용하면 기업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전략은 신규 상품을 기존 고객에게 팔거나 기존 상품을 신규 고객에게 파는 것이다. 하지만 해당 사업에 대해 전문성이 부족하거나, 고객 장악력을 과신할 경우 매우 위험해질 수 있다.

벽돌 크기의 전화기에 3000달러의 가입비를 내야 하는 ‘이리듐’이란 위성전화 프로젝트를 추진하다 천문학적 적자를 본 모토로라는 잘못된 기술을 고집하다 실패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혔다.

○ 반대자의 의견을 경청하라

연구팀은 반대자의 의견이 제대로 전달되는 체계를 갖추는 게 실패 예방에 무엇보다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모토로라가 이리듐 프로젝트를 추진하자 많은 전문가는 휴대전화 기술이 해마다 향상되는 데다 통화료가 저렴해지고 있지만, 이리듐 위성전화는 완성된다 해도 1980년대 초반 휴대전화의 기술적 한계를 뛰어넘지 못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물론 회사 측은 이를 무시했고 결국 아집이 비극을 불러왔다.

연구팀은 전략과제 검토를 위한 위원회 등을 설립할 때 반대자를 의도적으로 기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연구팀은 “전략 개발 과정에 관여하지 않았고 민감한 질문도 거리낌 없이 던질 수 있는 독립적 반대자들이 프로젝트를 공식적으로 점검하는 절차를 거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때 반대 패널의 리더는 외부인사이면서 전략 검토 결과에 아무런 이해득실이 없는 사람이어야 한다. 연구팀은 “반대자들은 과거 사례들을 면밀히 검토해야 하며 반대 의견이 의사 결정자에게 도달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통로도 확실하게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논문 저자들은 전략 과제를 검토할 위원회가 파워포인트 자료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파워포인트는 세부 사항을 과장되게 꾸미기 쉽고 읽는 사람마다 해석의 여지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파워포인트의 내용을 문장으로 다시 써 보면 단순한 파워포인트 자료가 얼마나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다고 저자들은 설명했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