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승련]어른들 정치적 욕심에 멍드는 童心

  • 입력 2008년 8월 7일 03시 01분


현직 대통령을 향해 “이명박 ×××” 혹은 “니가 그러면 난 널 살인하겠다”라고 쓴 자녀의 글을 읽은 부모의 심정은 어떨까.

“욕이나 반말을 해도 된다. 비공개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어른의 꼬임에 넘어간 자신들의 모습을 인터넷 동영상에서 발견한 마산 초등학생들의 상처는 누가 보상해 줄까.

5일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이 공개한 ‘한 어른’의 비뚤어진 행위는 어른들의 정치적 목적이 아이들을 건강하고 밝게 키우고 싶은 부모의 기대를 짓밟고, 바르게 자라야 할 어린이의 권리를 무너뜨린 사건이었다.

이날 한나라당 강용석 의원이 국회 가축법개정특위에서 공개한 어린이잡지 ‘과학쟁이’ 6월호(웅진씽크빅 씽크하우스)에 실린 ‘광우병’에 관한 글도 논란이 되고 있다.

서울대 수의과대 우희종 교수가 쓴 ‘미국 소, 먹어도 될까요’라는 글은 어린 독자에게 ‘미국 소=광우병’이라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해 보인다.

이 잡지에는 광우병과 무관한 다우너 소(주저앉는 소) 사진과 광우병 소의 뇌 사진이 나란히 실려 있다. 어른이 보기에도 ‘다우너 소는 광우병 소’라는 생각이 드는 편집이다. “소뼈에 붙은 살코기 역시 안전하지 않다”고 틀린 내용을 적은 사진 설명도 있다.

이날 특위에 진술인으로 참석한 우 교수는 “나는 본문을 썼을 뿐 상자 기사나 사진 제목은 내가 쓴 게 아니다.…잡지를 받아 본 뒤 나도 항의했다”고 해명했다.

같은 당 장윤석 의원이 “(편집으로 글이 왜곡됐다면) 9월호에 다시 고쳐 쓸 생각이 있느냐”고 묻자 우 교수가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이 잡지는 광우병의 위험성을 강조하면서 사진의 배열과 설명을 객관적 사실에 부합하도록 균형감 있게 처리하지 않았다. 인터넷에 떠도는 내용을 자의적으로 편집했다는 의구심마저 든다.

5, 6월 촛불시위 때 일부 초등학생이 거리로 나와 “미친 소, 너나 먹어”라며 어른들을 따라 했다.

이 아이들이 광우병의 실체를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분명한 것은 어른들의 정치적 목적이나 무신경한 일처리로 인해 생긴 어린이들의 분노와 불신은 치유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그 부담이 무책임한 가해자가 아니라 죄 없는 부모들에게 돌아가는 건 쇠고기 광풍이 남긴 안타까운 뒤틀림 현상의 하나다.

김승련 정치부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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