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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7월 28일 20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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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노조와 내부 인사는 물론 KBS 시사프로그램인 ‘미디어포커스’가 같은 내용을 번갈아 내보내고 있다. PD연합회는 헌법소원을 준비하고 있다.
이들 주장의 근거는 1987년 미국 방송통신위원회(FCC)의 공정성 원칙 폐지 결정. FCC는 당시 정치적 이해가 엇갈리거나 민감한 이슈에 대해 서로 다른 견해를 균형 있게 보도하라는 공정성 원칙을 지나치게 내세우면 공공 보도의 위축을 가져온다는 논리를 폈다.
당시 이 원칙의 폐기에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상업방송 체제의 탈규제를 중시했던 신자유주의적 흐름에서 나온 결정이었다.
그러나 지상파 방송의 민영화를 반대하고 공영방송 사수를 외치던 이들이 상업방송 중심 체제인 미국의 사례를 들며 공영방송의 핵심인 공정성 조항 폐기를 한목소리로 외치는 모습은 낯설게 느껴진다.
우리나라 공영방송의 모델인 유럽에서는 공정성을 다원화된 미디어 환경에서 더욱 보존해야 할 핵심가치로 여긴다.
BBC의 경우 ‘적절한 불편부당성(Due Impartiality)’은 방송이 지켜야 할 핵심적인 기초라고 강조하고 있다. BBC의 경우 감독기관인 ‘BBC 트러스트’에서 공정성을 심의하고 있으며 상업방송도 한국의 방송통신위원회 격인 오프컴(OFCOM)이 제재한다.
프랑스 방송위원회는 대립되는 양자의 방송 시간의 비율을 똑같이 맞추는 기계적 중립까지 강조하는 공정성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한 언론학 교수는 “미국의 공정성 폐기는 수천 개의 방송사가 있는 현실에서 방송사 간 견제와 균형을 맞출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라며 “미국의 상업주의와 신자유주의의 산물인 공정성 폐기를 공영방송을 옹호한다는 한국의 좌파 진영에서 주장하는 것은 아이러니”라고 말했다.
국내 방송시장은 KBS MBC가 보도와 시사 분야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광우병 관련 보도에서 보듯 그들이 제시한 이슈의 사회적 파장은 작지 않다.
미국과는 달리 두 거대한 공영방송의 편향에 대항할 지상파 방송사가 거의 없는 현실을 감안하면 공정성은 더욱 강화될 필요가 있다.
이들이 공정성 원칙을 폐기한 뒤 자율심의를 하자는 것도 시청자에게 그만한 신뢰를 받고 있는지 스스로 돌아볼 일이다.
올해 초 일본 공영방송인 NHK 기자 등 내부 직원들이 증권가 정보를 미리 알아낸 뒤 주식 투자를 해 물의를 빚자 NHK는 외부 전문가를 참여시킨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사건의 전모를 파헤치는 보고서를 최근에 발표했다.
최근 밝혀진 MBC의 ‘PD수첩 상황실’ 회의 문건을 보면 ‘시간을 끌어 버티자’고 했을 뿐 자체 진상 조사를 위한 노력이 없었다. 이 문건에는 ‘심의에 착수하거나 착수한다는 것 자체가 PD수첩 보도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아무리 급해도 공영방송의 기본 원칙을 한순간에 내쳐버리는 세력들이 공영방송 옹호를 말할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서정보 문화부 차장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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