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출범 100일 만에 정치 위기에 직면한 현 정부의 요구를 받아들이더라도 한국은 협상력 약화를 비롯해 적지 않은 대가를 부담해야 한다. ‘외교적으로 불이익을 당해도 재협상해야 한다’는 야당과 시민은 한국이 대미관계와 국제협상에서 처할 어려움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자동차 부문 재협상론이 나오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 미 의회에서 재협상 요구가 거세질 것이다. 주한미군 관련 각종 협상에서도 ‘못 믿을 나라’ 신세가 될 수 있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 대사는 어제 “재협상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면서 실망감을 나타냈다. 그러나 미국 정부가 양보를 하지 않으면 풀기 어려울 정도로 사태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자칫하면 ‘30개월 미만 쇠고기’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국면이다. 미국은 전체 수출량의 5% 정도에 불과한 30개월 이상 쇠고기를 지키려다 나머지 95%도 잃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지난달 19일 첫 정상회담에서 한미관계를 전략적 동맹관계로 격상하기로 합의했다. 미국은 공동 이익의 확대를 모색하기로 한 동맹국이 처한 현실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미국 쇠고기 수입 결정으로 촉발된 한국민의 불만은 6년 전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진 효순 미선 양 사건처럼 반미감정을 확산시키고 있다.
미국은 국제수역사무국(OIE)의 새 규정에 따라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출을 한국에 처음 적용함으로써 우리 정부에 너무 큰 부담을 주었다. 한국 정부는 한미동맹을 고려해 일본 대만과의 협상에 앞서 쇠고기 문제를 매듭지으려다 곤경에 빠졌다. 미국이 한국의 쇠고기 사태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해결을 위해 협조하는 것이 양국 모두에 도움이 된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