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구 초등학교 性폭력, 무지와 은폐가 키웠다

  • 입력 2008년 5월 1일 22시 58분


대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발생한 충격적 집단 성폭력 사건은 우리 사회의 총체적 병증(病症)을 드러낸 느낌이다. 클릭 몇 번이면 음란물이 쏟아져 나오는 인터넷, 어른도 얼굴이 화끈거리는 성인물을 내보내는 케이블TV, 낮 시간대 자녀를 방치한 학부모, 형식적이고 부실한 성교육, 사건에 안이하게 대처한 교사들, 사건 은폐에 급급했던 학교와 교육청…. 그중 가장 직접적인 책임은 사건 발생 초기에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피해를 확산시킨 학교에 있다.

학교의 무지(無知)와 방치 속에서 초등학생들이 학교 안에서 남녀를 가리지 않고 성행위를 강요하고, 피해자가 가해자로 바뀌어갔다. 학부모와 교사들이 둔감한 사이에 우리 아이들이 인터넷 음란물에 빠져 죄의식도 없이 그것을 흉내 냈다. 그런데도 학교는 가해자에 대해 독서교육과 학부모 상담으로 안이하게 대처하면서 관할 교육청에 관련 사실을 뒤늦게 보고했다. 인터넷 음란물에 중독돼 성폭력을 재미있는 놀이쯤으로 여기는 아이들의 상태도 파악하지 못했다.

학교 측은 가해자도 음란물의 피해자라고 보았기 때문에 체벌보다 교육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고 변명하고 있다. 이야말로 어린이 성(性)사건에 대한 무지를 드러낸 것이다. 이쯤 되면 성교육이 필요한 것은 어린이보다 교사라는 생각이 든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초등학교 성교육이 10시간으로 의무화돼 있지만 강당에 수백 명씩 모아놓고 진행해 아이들의 의식을 교정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성적 호기심이 강하고 인터넷 음란물에 무방비로 노출된 아이들에게 왜 타인의 성을 존중하고 배려해야 하는지를 일깨워주고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내려면 소규모 토론식 수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연루된 어린이들의 대다수가 방과 후 적절한 보살핌을 받지 못한 맞벌이 부부의 자녀였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여성의 경제활동으로 진공상태에 빠진 가정의 보육 및 교육시스템에 대한 성찰과 대책이 절실하다.

남녀를 떠나 소년기 성폭력은 평생 상흔(傷痕)으로 남는다. 가해 및 피해 어린이에 대한 교화 및 치유 프로그램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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