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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4월 19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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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청업체 쥐어짜는 원가관리는
기업의 생존기반 허무는 자충수
▷안태식 교수 : 전략적 원가관리(strategic cost management)의 정확한 개념은 무엇인가. 지금 전략적 원가관리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D J 난다 교수 : 전략적 원가관리는 기존 원가관리와는 완전히 다른 접근이다. 전통적 원가관리는 제조활동의 원가 측면에서만 접근하는 경향이 강하다. 반면 전략적 원가관리는 기업이 부가가치를 생성하는 모든 과정, 즉 ‘총체적 가치 사슬(entire value chain)’에서 원가를 절감하고 차별화를 강화하기 위한 모든 전략을 포괄한다. 제품 기획이나 원자재 공급원 확보와 같은 초기 단계부터 최종 제품 판매는 물론이고 판매 이후의 활동과 협력업체와의 관계에도 상당한 비중을 둔다. 가치 사슬의 범위를 기업 내부에만 국한하지 않고 외부로 대폭 확대한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업체가 신차를 출시한다고 가정하자. 전통적 원가관리는 생산 비용을 얼마나 줄이고 판매를 얼마나 늘리느냐에만 집중할 것이다. 하지만 전략적 원가관리는 신차 출시가 향후 기업의 전략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주목한다. 신차 판매망을 어떻게 구성하고 운영할 것인지, 신차 출시로 이 회사를 바라보는 고객의 관점이 어떻게 바뀔지, 협력업체와는 어떤 관계를 구축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안 : 전략적 원가관리를 제대로 실천하려면 구성원들의 행동 방향을 결정하는 성과측정 문제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바람직한 성과측정은 어떤 것인가.
▶난다 : 전략적 원가관리가 성공하려면 회사 전략과 일치하는 성과측정이 필수적이다. 바람직한 성과측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의사소통이다. 기업이 근로자와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해야 근로자들에게 올바른 방향으로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 이때 의사소통의 수단이 바로 핵심성과지표(KPI·Key Performance Index)다.
일반적으로 생산직 근로자나 임시직 근로자는 자기가 근무하는 회사의 전략이나 비즈니스 모델에 대해 아무런 지식을 갖고 있지 않다. 이는 매우 우려되는 현상이다. 근로자들도 경영자만큼이나 우리 회사에 중요한 것이 무엇이고, 왜 중요한지를 인식해야 한다. 경영진이 종업원을 비용이 아닌 투자의 개념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이 점 역시 핵심 인재 양성 부문의 KPI를 통해 의사소통할 수 있다.
▷안 : 한국 기업의 성과평가가 미국 기업과 다른 점은 무엇이라고 보나.
▶난다 : 아시아 기업에서는 조직에 대한 충성을 기반으로 한 ‘근로윤리(work ethics)’를 많이 강조하는 편이다. 따라서 동료가 경쟁자라기보다는 회사의 공통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함께 일하는 사람이란 생각이 강하다. 이는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성공적인 동료평가 시스템의 정착을 가로막는다는 단점이 있다. 성과측정을 하려면 상사의 평가는 물론 동료 간 평가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많은 아시아 기업은 동료 평가가 동료 간 경쟁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또 다른 점은 실적 기반 평가와 관련한 것이다. 내가 가르치는 한국 학생 대부분이 ‘경영학석사(MBA) 과정 졸업 후 첫 직장에서 보너스를 전혀 받지 못했다’고 말해 놀란 적이 있다. 미국 기업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대부분은 첫 직장에서부터 실적 기반(performance based) 인센티브를 받는다. ▷안 많은 한국 기업은 성과평가가 곧 데이터를 근거로 한 정량평가(objective measure based evaluation)라고 오인하고 글로벌 선진 기업들의 성과평가 역시 모두 정량평가로 이뤄졌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야기하는 문제점도 크다고 생각한다.
▶난다 : 정량분석이나 정성분석 어느 쪽으로 이뤄지든 성과평가의 초점은 이 성과가 기업의 전략과 비즈니스 모델에 어떤 가치를 가져오느냐에 맞춰져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최근 많은 기업이 도입하고 있는 균형성과표(BSC·Balanced Score Card) 또한 마법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각 조직의 특성과 전략에 맞는 평가지표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안 : 전략적 원가관리에서는 바람직한 납품업체와 구매자 간 관계를 어떻게 보고 있나.
▶난다 : 전략적 원가관리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가 바로 구매자와 공급자 간 협력관계를 더욱 강화하는 것이다. 일본 자동차산업은 세계 최고 부품업체들의 힘으로 경쟁력을 유지해왔다. 특히 도요타의 사례는 납품업체와의 협력관계가 왜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교본이다. 도요타는 하청업체 쥐어짜기 식의 원가관리를 지양했다. 납품업체의 협력을 얻어내고 납품업체의 자생력을 높이는 데 중점을 뒀다. 때문에 도요타 납품업체는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존재한다.
반면 GM, 포드, 크라이슬러는 납품업체의 단가를 인하하는 것에만 치중했다. 과도한 가격인하 압박 때문에 일부 납품업체가 문을 닫으면서 기현상이 발생했다. 살아남은 납품업체들이 합병을 통해 몸집을 불리며 당초 의도와는 달리 오히려 납품업체의 영향력이 과거보다 커진 것이다. 게다가 미국 자동차산업의 전반적인 퇴조까지 겹치자 납품업체의 실적 악화가 자동차회사에도 상당한 악영향을 미쳤다. 델파이(과거 GM의 자회사였던 부품업체)의 실적 악화는 GM의 공급망(supply chain) 전체를 망가뜨렸다.
글로벌 경쟁 시대에서 기업의 경쟁력은 회사 내부뿐 아니라 외부 협력업체와의 관계에서도 나온다. 자사의 시장 전략에 꼭 맞는 경쟁력을 지닌 공급업자를 확보하는 것은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요인이다. 이때 협력이란 수동적인 공급업자와 대기업 간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파트너로서 존중하는 적극적인 공조체제를 말한다. 단순한 생산관리 수준이 아닌 전략적 동맹과 정보 공유, 지식 경영 등을 모두 포괄한다는 의미다. 이것이 바로 한국에서 강조하는 상생의 의미라고 생각한다.
::D J 난다 교수는
D J 난다 교수는 인도 뭄바이대에서 경제 및 통계학을 전공했고 미국 뉴욕 주 로체스터대에서 경영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시간대를 거쳐 2002년부터 듀크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경영 회계, 성과 측정 및 보상, 기업지배구조 등이 주 연구 분야다.
○ 안태식 교수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스틴 텍사스대에서 회계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서울대 회계학 연구센터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