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8년 4월 10일 02시 59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러시아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을 이곳에 데려와 5, 6일 정상회담을 열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에게 소치 개발 모형물을 보여주었다. 푸틴 대통령은 모형물에서 멋진 흰색 요트들이 바다에 떠 있는 모습을 가리키며 “저 배가 2014년 당신이 지낼 곳”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이 자랑하는 개발 청사진은 이곳의 현실과 상당한 괴리감을 느끼게 한다. 소치 시는 지난해 7월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된 뒤 투기 바람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경기장 용지 가격은 평균 3배 올랐다. 집값이 10배나 뛴 곳도 허다하다.
흑해 연안의 따뜻한 관광지가 아홉 달 사이 이처럼 투기장으로 변했지만 정작 올림픽 시설물 공사는 첫 삽도 뜨지 못했다.
가장 큰 이유는 토지 수용 단계에서 주민들의 저항이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 지역 공무원은 “옛 소련 시절 소치 공항을 넓히기 위해 주변 텃밭을 수용하려다가 수류탄을 몸에 두르고 반대하는 주민들 때문에 공사를 중단한 적이 있는데, 지금 반발의 강도가 그에 못지않다”고 털어놓았다.
이런 사정 때문에 소치 시의 올림픽 공사비는 천문학적 규모로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소치 시는 200억 달러(약 19조4000억 원)에 올림픽 경기장 공사를 끝낼 것이라고 선전했지만 지금은 “그 돈으로는 도로 건설도 빠듯하다”는 말이 나온다. 올림픽 시설에 들 공사비를 당초 예상치의 세 배인 600억 달러로 늘려 잡는 전문가도 많다.
평창을 누른 도시가 몸살을 앓는 모습을 보고 고소해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원유를 팔아 한 해 1000억 달러 이상의 현금을 거머쥐는 나라가 공사 기간이 6년이나 남은 국책사업을 망칠 것으로 생각하기도 어렵다.
문제는 러시아의 일부 정치인이 한국을 거론하며 억지 주장을 편다는 점이다. 세르게이 시시카레프 하원의원(통합러시아)은 “한국이 지금도 2014년 동계올림픽을 치를 의도를 갖고 있으며, 러시아에서 드러난 문제들은 한국의 ‘희망’을 북돋워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고 러시아 인터넷신문 가제타닷루(gazeta.ru)가 지난달 5일 보도했다.
올림픽 개최지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결정하는 것이지 한국의 희망대로 선정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대부분 러시아인도 아는 상식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주장을 러시아 국내 정치용 발언으로 풀이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러시아인은 “올림픽 공사 부진에 대한 관심을 남의 나라에다 돌리고 정부 예산을 더 많이 가져가기 위한 발언”이라고 말했다.
이런 만큼 한국이 이에 말려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모스크바 외교 전문가들의 중론이었다. 정면 대응할 경우 공론화에 성공한 시시카레프 의원의 정치적 입지만 높여 줄 뿐 한국이 얻을 것이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한국과 러시아가 협력할 분야가 늘어나는 시점에서 이런 일로 양국 관계가 흔들려서는 안 될 일이다. 8일 한국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 씨가 타고 간 우주선도 러시아가 제작한 것이다. 지난해 한국이 러시아에서 수입한 석유는 전년에 비해 3배 늘었다.
그러나 외국의 몰지각한 정치가들에게 한국이 언제까지나 ‘만만하게 거론할 수 있는 나라’로 취급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불필요한 잡음을 키우지 않으면서 이 같은 억지가 발붙일 수 없도록 만들 지혜는 없을까. 정부의 현명한 대처를 기대한다.
정위용 모스크바 특파원 viyonz@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