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주성하]‘주공전선 경제전선’으로 바뀐 평양 구호판

  • 입력 2008년 1월 28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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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주민은 1월이 특히 괴롭다. 우선 설날 새벽부터 각 지방의 김일성 주석 동상 앞에 화환을 증정하고 ‘충성의 결의 모임’을 가져야 한다. 며칠 뒤에는 ‘신년공동사설 관철을 위한 궐기대회’에 참가해 한나절 동안 추위에 떨어야 한다. 신년사설에 대한 학습도 진행된다. 내용을 얼마나 잘 암기했는지에 따라 평가가 내려진다. 간부들이 ‘분위기를 쇄신한다’며 주민을 집중적으로 들볶는 기간도 1월이다. 전국 각지의 구호판도 그해 신년사설에 따라 이때 바뀐다.

올해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순안공항으로 가는 도로 옆에 ‘주공전선 경제전선’이라는 구호가 26일 일제히 등장했다고 최근 평양을 방문한 남측 인사들이 전했다.

북한이 이번 신년사설에서 올해를 “2012년 강성대국의 문호를 열기 위한 경제발전의 첫해”로 규정하고 “강성대국 건설의 주공전선은 경제전선”이라고 밝힌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강성대국 건설’ ‘주공전선 경제전선’…. 말은 참 그럴듯하다. 그러나 기자는 해마다 반복되는 ‘말의 향연’에 이미 질려버렸다. 해마다 사설 내용을 맹목적으로 외워야 하는 북한 주민은 얼마나 피곤하겠는가.

강성대국은 1998년 대포동 미사일을 발사했을 때 등장했던 말이다. 북한은 당시 “인공위성까지 쏘아 올렸으니 몇 년 내에 강성대국을 이룰 것은 확실하다”고 선전했다. 그런데 이번에 그 목표연도가 2012년으로 바뀌었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주공전선은 어떤가. 지난 2년 동안 북한의 주공전선은 농업이었다. 하지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식량 값은 해마다 오른다.

올해 초 쌀 가격은 kg당 1300원대에 이르렀다. 지난해에 비해 적어도 30% 이상 오른 가격이다. 금년 봄에도 이런 신기록 행진은 이어질 것이다. 과거에도 경공업 철도 전력 등 각종 분야가 주공전선이 됐지만 사정이 나아진 적은 없었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핵’과 ‘선군정치’가 여전히 최우선인데 경제가 ‘주공전선’이라는 말은 모순이다. 국제사회의 외톨이를 자처하면서 경제를 살리겠다는 말도 억지일 뿐이다.

북한이 당면한 주공전선은 경제파탄의 원인을 분석해 옳은 해답을 내놓는 일일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5년 뒤 우리는 “2022년까지 강성대국을 이루겠다”는 신년사설을 다시 보게 될 것이다.

주성하 국제부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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