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김상영]경제는 혼자 가지 않는다

  • 입력 2008년 1월 24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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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상황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심각하다. 미국은 경기 침체 위협을 받고 있다.”(22일 조지 소로스 ‘소로스 투자기금’ 회장)

“미국의 경기 침체는 전 세계 경제에 타격을 줄 것이다.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는 신흥시장의 상황도 악화될 수 있다.”(21일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국제통화기금 총재)

다른 나라 영향서 자유롭지 못해

작년 3월 이후 세계경제를 뒤덮고 있는 먹구름에 대한 경고 수위가 요 며칠 새 최고조에 이르렀다. 이번 먹구름이 집중호우로 물난리를 나게 할지, 일회성 소나기만 뿌릴지, 아니면 잘 관리해 가랑비로 막을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위기가 오고 있다는 징후는 그 어느 때보다 뚜렷하다. 18일 미국에서 시작해 21, 22일 아시아, 유럽으로 번져간 전 세계 증시의 패닉 현상은 ‘공황’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미국의 금리 인하 조치로 발등의 불은 껐지만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다. 금리를 파격적으로 내렸는데도 미미한 반등에 그친 각국 증시가 이를 증명한다. 일단 폭락세는 멈췄지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라 다들 눈치를 살피는 양상이다. 문제의 근원인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이 그대로 잠복해 있기 때문이다. 정확히 손실액이 얼마인지도 모르는 불확실성 때문에 시장은 더욱 불안해한다.

최근 2년간 국내에서는 한국경제가 미국경제에서 탈동조화(脫同調化)했다는 분석이 힘을 얻었다. 급팽창하는 중국시장과 인도시장이 있으니 미국경제가 죽을 쒀도 영향을 덜 받을 것이란 이론이다.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 각국에서도 이런 분석이 나왔고 서구의 이코노미스트들도 일부 가담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전 세계 증시의 동반 폭락으로 어떤 나라도 다른 나라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오히려 올해 들어 주가는 문제의 근원지인 미국보다도 아시아나 유럽이 더 많이 떨어졌다. 심지어 인도는 21일 주가가 7.41% 폭락한 데 이어 22일 또다시 9.75%까지 떨어지다 거래가 중단되는 그야말로 공황 상태를 겪었다.

2001년 이후 전 세계는 사상 유례 없는 초저금리를 바탕으로 부동산과 주식에 거품을 만들어왔다. 특히 미국 월가는 거품이 낀 부동산으로 복잡한 파생금융상품을 만들어 호황을 누렸다. 거품이 꺼져 집값이 떨어지면 파국이 올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지금의 사태는 예견됐다고 할 수 있다. 끊임없는 경고가 있었지만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거품은 꺼지기 전까지는 누구에게나 달콤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미국에서 만든 이 위기가 남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시장이 통합된 글로벌 경제에서 금융은 가장 취약한 영역이다. 미국의 기관투자가는 한국뿐 아니라 중국 일본 유럽에도 투자한다. 한국 중국 일본 유럽의 기관투자가도 각국에 투자한다. 이처럼 돈이 얽히고설키다 보니 한 나라에서 발생한 금융 위기는 곧바로 다른 나라로 전파된다. 오죽하면 국제 금융시장은 ‘깨지기 쉬운 유리잔’이란 비유가 나올 정도다. 세계화에 따라 치르는 비용인 셈이다.

글로벌 시각으로 정책 조율해야

경제를 최우선 과제로 내세운 이명박 정부로서는 출범도 하기 전에 매우 안 좋은 상황을 맞은 셈이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최악의 외생변수가 미리 터졌다는 점에 대해 고마워해야 할지도 모른다. 다만 이번 사태에서 교훈은 얻어야 한다.

우선 한국의 정치인들이 흔히 그렇듯이 우리만 잘하면 경제가 잘될 것이라는 착각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세계화 시대에는 우리 의지와는 상관없이 다른 나라의 실패 때문에 경제가 결딴날 수 있다. 따라서 경제정책을 짜는 눈높이는 국내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미국 중국 일본 유럽까지를 고려한 글로벌한 시각으로 정책을 보지 않으면 안 된다.

또 하나, 거품은 언젠가는 반드시 꺼진다는 사실이다. 거품의 유혹은 너무나 달콤해서 정치를 하다 보면 흔들리게 돼 있다. 모든 유권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정책을 외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많은 집권자가 이 사실을 알면서도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요 며칠 출렁거린 세계 금융시장을 보면서 느낀 단상이다.

김상영 편집국 부국장 you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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