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심규선]한국의 모리(森)는 누구인가

  • 입력 2008년 1월 16일 19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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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특사인 이상득 국회 부의장이 일본을 방문 중이다. 그쪽의 접대나 만나는 인사들의 무게에서 해빙 무드를 감지한다. 특사 활동의 하이라이트는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총리를 예방하고 새 정부에 대한 협조를 당부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만찬을 주최한 모리 요시로(森喜朗) 전 총리를 더 주목한다. 현직 총리 임기와 관계없이 일한의원연맹 회장인 모리 전 총리의 역할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5년’ 물밑채널도 사라져

일각에서는 말한다. “모리 전 총리는 한국통이 아니다. 전직 총리가 일한의원연맹 회장을 맡는 관례에 따라 회장직을 맡았을 뿐이다.” 한마디로 괜한 트집이다. 그는 2001년부터 줄곧 일한의원연맹 회장직을 맡고 있다. 그보다 한국 문제에 더 오래, 더 깊숙이 관여해 온 일본 국회의원이 몇 명이나 될지 궁금하다. 그는 38년간 국회의원으로 일하며 총리까지 지내고, 집권 여당인 자민당에서 ‘킹 메이커’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 그를 깎아내린다면 ‘겨우’ 3선에다 일본통도 아닌 문희상 의원이 한일의원연맹 회장을 맡고 있는 것을 일본은 어떻게 볼지 궁금하다.

노무현 정권에서 한일관계는 ‘잃어버린 5년’이었다. 오죽했으면 3년 전부터 예견 같지 않은 예견이란 게 돌아다녔을까.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와 노무현 대통령이 모두 물러나야만 한일관계에 진전이 있을 거라는. 처음에는 답답해서 해 본 우스갯소리였다. 그런데 그게 진실이 됐다.

후쿠다 총리가 이 특사를 만났을 때 ‘相得’이란 이름을 ‘서로 득이 된다’는, 즉 ‘윈윈’으로 풀이했다고 한다. 한일관계가 윈윈의 방향으로 가는 건 다행이다. 그러나 정권 교체기의 해빙 무드는 일과성이다. 문제는 다음이다. 노 정권의 실패를 극복하지 못하면 한일관계는 또다시 막히거나 깨질 것이다. 고이즈미의 ‘옹고집’도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노 정권의 대일 외교방식도 크게 세 가지 잘못을 저질렀다.

가장 큰 잘못은 대통령이 너무 자주, 너무 쉽게 앞에 나선 것이다. 일관성도 없었다. 어떤 때는 일본에 지나치게 우호적인 메시지를 보내고, 어떤 때는 퇴로도 없이 몰아붙였다. 그러자 외교관은 설 땅을 잃어버렸고 침묵했다.

다음이 ‘특수관계’ 때문에 일본에는 좀 세게 나가도 괜찮을 것이라는 유혹에 빠져 버린 것이다. 일본에 잘못이 있다는 것과 오버해도 좋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관계가 경색되면 할 수 있는 일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노 정권 5년이 꼭 그렇다.

마지막이 일본 측과 속 깊은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일본통이 없었다는 것이다. 노 정권은 생리상 있어도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한일문제는 충돌하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에둘러 갈 방법을 찾지 못했다.

셋 중에서 앞의 두 잘못은 새 대통령이 조심하면 된다. 관료들은 대통령의 의중에 맞춰 충실히 보좌할 것이다. 문제는 세 번째다. 일본통을 하루아침에 만들 수는 없다. 있더라도 중용하거나 의견을 구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다시 일본통이 필요한 때다

모리 전 총리는 얼마 전 후쿠다 총리의 특사로 한국에 와 이 당선인과 만났다. 후쿠다 총리가 그 말고 다른 특사를 생각할 수 있었을까. 아닐 것이다. 앞에서 모리 전 총리를 언급한 건 우리에게도 그런 인물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다.

최근 젊은 의원들은 한일의원외교도 이젠 거물들이 물밑에서 할 게 아니라 공개적으로 해야 한다고 말한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외교는 총력전이다. 젊은 의원들이 할 일이 있는가 하면, 원로들이 해야 할 일도 있다. 특히 일본을 상대할 때는 더욱 그렇다. 일본만큼 ‘사전 조율’과 ‘막후 조정’을 중시하는 나라도 없기 때문이다.

한일 간에도 밀린 숙제가 많다. 과거사 문제, 경제 협력, 북핵 조율, 한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재일동포 권익보호 문제 등등. 이런 난제를 해결하는 데 뒤에서 밀어줄 듬직한 ‘한국의 모리’는 누구인가. 있기는 있는가.

심규선 편집국 부국장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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