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서영아]일본이 공무원-의원 접촉금지 추진하는 뜻

  • 입력 2008년 1월 10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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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일본 총리의 공직개혁 자문기구가 정무 전문직 이외의 국가공무원이 국회의원과 접촉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공무원 개혁안을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바꿔 말하면 각 부처가 의원들을 상대로 사전 로비를 벌이는 것을 차단하겠다는 뜻이다.

이 같은 개혁안을 만드는 것은 모리야 다케마사(守屋武昌) 전 방위성 차관을 둘러싼 군수 조달 비리가 불거진 점이 배경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방위성 차관이 업자와 만나는 자리에 장관을 불러 동석시켰다는 증언이 나왔고 이권단체가 이른바 족(族)의원(업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의원을 뜻하는 말)들에게 로비한 정황도 나타났다. 그러나 관료와 정치인, 업자가 뒤섞인 비리의 본색은 아직 상당 부분이 베일에 싸여 있다.

일본에서 이뤄지는 정관유착의 갖가지 폐해를 살펴보면 모리야 차관의 비리 정도는 ‘빙산의 일각’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본에서는 각 부처가 법안이나 정책의 의회 통과를 위해 의원들에게 사전 로비를 하는 것이 일상화돼 왔다. 약간의 전문성과 부처에 대한 친밀도를 내세워 이권과 영향력을 행사하는 ‘족의원’도 적지 않다. 업자와 정치인, 관료가 서로 밀어 주고 사전에 입을 맞춰 ‘담합’해 온 측면이 없지 않다.

일본 정부는 이달 내 이 공무원 개혁안을 토대로 정기국회에 ‘국가공무원제도개혁기본법안’을 제출할 계획이다. 그러나 정관계가 반발하고 있어 법안이 그대로 통과될지는 아직 판단하기 어렵다. ‘정-관 접촉 금지’안은 2002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정권 때도 나왔으나 족의원들의 반발로 무산된 바 있다.

“공무원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있는 것이지 부처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는 게 후쿠다 총리의 지론이다. 따라서 이 법안의 향방은 후쿠다 총리의 개혁 의지가 과연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시금석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다른 한편으로 이런 시도는 공무원과 정치인의 관계가 얼마나 조심스러워야 하는지를 새삼 되돌아보게 해 준다.

마침 한국에서는 신정부가 추진할 정부 부처 통폐합을 앞두고 일부 부처가 벌써부터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살아남기’ 위한 조직적인 로비를 벌이고 있다고 9일 인수위가 경고했다. 한국에서야말로 이런 제도를 도입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서영아 도쿄 특파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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