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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1월 9일 19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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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각책임제 국가인 영국은 정권교체에 단 하루도 걸리지 않는다. 토니 블레어가 이끈 노동당은 1997년 5월 1일 총선 승리로 보수당의 18년 장기집권을 종식시켰다. 존 메이저 총리가 다음 날 버킹엄궁에서 여왕을 알현해 사임하고 나온 30분 뒤 블레어 총리가 여왕을 알현하고 곧바로 취임하는 것으로 정권교체는 끝났다.
프랑스는 대통령 당선 확정부터 취임까지 10일 정도 걸린다. 독일은 총선 후 30일 이내에 연방하원 개원 직후 새 총리가 취임한다. 내각제 국가는 야당이 의회를 통해 정부 업무를 항상 파악하고 있고 예비내각도 있어 정권교체가 간단하다.
미국은 원래 대통령직 인수에 4개월이 걸렸다. 그러나 국정 공백을 줄이기 위해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때인 1933년 약 11주로 줄여 우리와 비슷하다. 미국의 정권 인수가 우리와 다른 점은 내각 및 백악관 고위직 내정자에 대해 오리엔테이션과 교육 훈련을 한다는 사실이다.
고위직 내정자에 대한 오리엔테이션 제도는 제럴드 포드 대통령 때인 1975년에 시작됐다. 백악관 비서실장, 정책 보좌관, 대변인과 예산국장, 하원 원내대표, 대통령 고문, 전문가들이 강사로 나섰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때는 하버드대 존 F 케네디 행정대학원이 내정자들 대상의 오리엔테이션을 주도했다. 세미나 형식이었지만 공직윤리와 직무에 관한 브리핑도 있었다.
미국의 새 대통령은 취임 초에 수천 명의 공직자를 새로 임명한다. 이들은 대부분 화려한 경력과 경험의 소유자이다. 하지만 공직사회 경험이 없는 경우가 많아 정권 출범 초기에 시행착오를 할 우려가 있다. 내정자들에 대한 오리엔테이션 제도가 도입된 것은 이 때문이다.
미국은 2000년에 대통령직인수법(PTA)을 개정해 각료를 제외한 정부 고위직과 백악관 참모 내정자들에 대한 오리엔테이션과 브리핑을 명문화했다. 2005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2차 임기 때는 인수위 예산 770만 달러 가운데 내정자 교육 예산이 100만 달러나 됐다.
이명박 정부에서 고위직을 맡을 사람들이 곧 결정된다고 한다. 다양한 경력에 분야별로 전문성을 갖춘 사람들도 있겠지만 공직 경험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들이 새 정부 출범 후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려면 예산과 조직 및 정보 관리 교육, 대(對)의회 및 언론 관계 요령, 그리고 공직자 윤리 교육은 필수적이다.
한 전직 장관은 “공직 경험이 없는 사람이 업무를 제대로 배우려면 1년은 걸린다”고 말했다. 그는 “대기업은 부장 임원 심지어 최고경영자(CEO) 교육도 하는데 고위 공직자 교육이 없는 것은 문제”라며 “고위직 내정자에 대한 교육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는 2003년 대통령직 인수에 관한 법률을 제정할 때 미국에서 2000년 이미 명문화한 새 정부 고위직 내정자에 대한 오리엔테이션 제도는 포함시키지 않았다. 굳이 법률을 개정하지 않고도 고위직 내정자들에게 오리엔테이션을 실시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권순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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