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김상영]張三李四의 아파트

  • 입력 2007년 12월 13일 02시 59분


코멘트
재정경제부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 가운데 한국 정부에 대한 부동산 관련 권고를 누락시켜 말썽이 됐다. ‘이전에도 권고한 것으로 새로운 내용이 아니어서 뺐다’는 것이 재경부의 해명이다. 말이 안 된다. 경제정책 보고서에 나오는 내용은 반복적이다. 부동산뿐 아니라 다른 부문에 대한 권고 역시 여러 번 나왔던 내용들이다. 정부 스스로도 부동산 정책에 대해 자신이 없다는 증거이다.

1주택자에게도 징벌적 세금

거대 여당 후보의 지지율이 20%에도 못 미칠 정도로 민심이 등을 돌린 데는 부동산정책이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고 나는 믿는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주변을 돌아보면 딱한 경우가 한둘이 아니다. 다음 정부가 참고하라는 뜻에서 몇 가지 사례를 들어 보겠다.

평범한 샐러리맨 A(45) 씨는 서울 마포의 32평형 아파트에 살다가 작년 10월 반포에 비슷한 면적의 아파트를 구입해 이사했다. 마포의 아파트(시가 4억 원)가 팔리면 은행 대출금을 갚을 계획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11·15대책, 올해 1·11대책 등이 나오면서 거래가 뚝 끊겼다. 집값을 낮췄지만 팔리지 않기는 매한가지였다. 결국 1가구 1주택자가 양도소득세를 내지 않아도 되는 1년의 유예기간을 넘기고 말았다. 이제 집이 팔린다 해도 50%의 양도소득세를 내야 한다. 더구나 올해 종합부동산세만 600만 원이 부과됐다. 이자율까지 올라 대출금 부담도 이만저만 아니다. 그는 지금 참여정부에 이를 갈고 있다.

B(50) 씨는 21년 전 마련한 경기 과천의 30평형 아파트에 지금도 살고 있다. 4500만 원에 샀던 이 아파트는 지금 10억 원이 넘는다. 올해 내야 하는 종부세는 312만 원, 재산세를 포함한 보유세는 650만 원이다. 20년 넘게 산 집을 팔고 이사하기 싫어 세금을 내긴 하지만 억울한 생각이 든다. 설사 팔려고 해도 6억 원이 넘는 집은 1주택자라도 양도소득세를 내야 한다. 그는 차기 정부가 1주택자 또는 장기보유자에 대해선 배려해 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A 씨와 B 씨는 내가 잘 아는 사람들이다. 회사 일이 바빠 투기에 신경 쓸 여유도 없었고 집을 두 채 가지려 하지도 않았다. 이런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이 소위 ‘징벌적 세금’이라는 종부세의 대상이 된 것이다.

더욱 딱한 사람은 은퇴한 뒤 연금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이다. 서울 및 수도권 신도시 아파트는 웬만하면 6억 원이 넘으니 1주택자라도 종부세의 대상이 된다. 자식들에게서 가끔 용돈을 받는다 해도 연금만으로 부담하기는 만만치 않다. 이런 사람이 올해 1만4000여 명이다. 다른 사례도 있다.

서울 여의도 S아파트는 지은 지 20년이 넘은 중대형 아파트로 주민들이 재건축을 추진했다. 기준이 강화된 안전진단을 통과한 데다 용적률이 850%여서 현재의 15층에서 30층으로 높일 수 있어 기대가 컸다. 하지만 재건축 아파트에 대한 소형평형 의무 비율이 발목을 잡았다. 재건축을 하려면 20%는 전용면적 60m²(18.2평) 이하로, 40%는 60∼85m²(25.7평)로 지어야 한다. 이래서는 사업이 진행될 수 없다. 서울 핵심지역에 아파트 공급을 늘릴 수 있는데도 행정규제로 막아 놓은 꼴이다. 주민들이 ‘재산권 약탈’이라며 정부를 성토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정책 잘못을 국민에게 전가

얼마 전 경기 안양시 평촌의 48평형 아파트에 산다는 독자가 e메일을 보내왔다. “저는 14년 전 평촌신도시에서 아파트를 분양받아 지금까지 1주택자로 살아왔습니다”로 시작한 편지는 “집값 오른 게 국민 잘못입니까? 왜 정책 잘못으로 집값 올려놓고 세금 내라는 것입니까”로 이어진다. 참여정부와 여당이 조금만 생각이 있다면 이런 분 말에 진즉 귀를 기울였어야 했다.

이런 사례들이 주변에 부지기수다. 이래 놓고도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다면 바로 그 무심함에 국민이 등을 돌린 것이다.

김상영 편집국 부국장 youngki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