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민웅]TV의 편파보도가 문제되는 이유

  • 입력 2007년 11월 20일 19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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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방송이 대통령선거 방송에서 공정성의 덫에 걸려 국민의 알 권리를 대행하는 데 지장이 많다.’ 16일 ‘공영방송 발전을 위한 시민연대’ 창립 2주년 기념 세미나에서 한 시민단체 토론자가 제기했던 논변의 요지다. 그런가 하면 2004년 대통령 탄핵 때는 탄핵 반대는 시대정신이고 시대정신의 대변은 사회정의이기 때문에 탄핵 반대 의견을 두둔하는 것은 편파보도가 아니라는 강변이 있었다. 심지어 공정성은 뉴스의 으뜸가는 가치인 진실보도를 훼손한다는 극언도 방송계와 그 주변 시민단체에서 나온 적이 있다. 또 공정보도 요구는 관점 있는 시사·교양 프로그램의 제작을 방해한다는 항변도 있었다. 언뜻 일리 있는 논변으로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보도 공정성의 의미와 그 필요성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서 나온 주장들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첫째, 국민의 알 권리와 표현의 자유가 강조하는 핵심 요건은 자유권과 다양성과 공정성이다. 즉, 국민은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말할 권리가 있을 뿐만 아니라, 남들의 다양한 의견을 공정하게 들을 권리도 있다는 말이다. 어째서 여당 대통령 후보에게 유리하게 보도하는 것은 국민의 알 권리에 부응하는 것이 되고, 야당 후보에게 불리한 정보를 확인해 보도하지 못하는 것은 국민의 알 권리를 방해하는 것인지 참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수사권이 없는 언론으로서는 검증하기 힘든 사안도 있다.

“공정성 덫이 알 권리 훼손” 망발

둘째, 언론의 규범적 임무 가운데 하나인 ‘사회 갈등을 공정하게 보도함으로써 갈등 해결에 도움이 되는 담론적 실천을 통해 사회통합에 이바지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명제의 의미를 살펴보자.

이는 언론이 갈등의 직접 당사자들이 갖고 있는 정보와 의견뿐만 아니라 갈등의 영향을 받는 제3자들, 중립적 중재자들, 그리고 법적 권한을 가진 조정자들이 갖고 있는 정보와 의견도 공정하게 취급함으로써 수용자가 정보의 진실성과 의견의 타당성을 비교 검증하고 판단할 수 있게 해야 갈등의 진정한 해결에 도움이 된다는 의미다. 이런 점에서 공정성이 진실보도를 훼손한다는 주장은 거의 망발에 가깝다.

셋째, 공정성의 하위 범주 가운데 하나인 불편부당성은 산술적 균형이나 소극적 중립을 의미하지 않는다. 불편부당성의 진정한 의미는 중립적인 자세로 문제에 접근하되, 충실한 취재를 통해 진실이 확인되면 그 진실을 바탕으로 합리적인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적극적 불편부당성’을 뜻한다. 진실을 확인하고서도 불편부당성을 내세워 양시양비론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BBC ‘편집 가이드라인’이 지적하고 있듯이 공정성은 단일 프로그램 내에서뿐만 아니라 프로그램들 간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예컨대 사회적 갈등 사안에 대해 이번 주에는 좌파적 관점에서 프로그램을 제작해 방송할 수 있지만, 만약 그렇다면 그 다음 주에는 반드시 우파적 관점에서 프로그램을 제작해 방송해야 하며, 그 사실을 예고할 것을 요구한다. 이런 점에서 공정성 요구는 관점 있는 프로그램의 제작을 방해한다는 주장도 수용하기 힘들다.

끝으로 시대정신이나 사회정의는 본질적으로 사회적인 것이다. 누군가 목소리 큰 사람이 일방적으로 부르짖는다고 해서 그것이 곧 시대정신이 되고 사회정의가 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사회정의는 사회적 덕성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발견하고 실천할 수 있다. 공정한 보도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과연 갈등적 쟁점에 관한 사회정의와 시대정신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 수 있을까?

인간은 전지전능하지도 않고 도덕적으로 완벽하지도 않다. 그래서 우리의 판단은 지식의 부족과 도덕적 흠결로 잘못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공정한 경쟁과 협력의 조건인 정의를 추구한다.

시대정신은 정확한 보도로 꽃펴

그러므로 정확하고 공정한 정보와 의견을 바탕으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 숙의하는 과정은 시대정신 또는 사회정의를 발견하는 과정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시대정신 내지 사회정의의 우선성 원칙을 내세워 공정성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결정적인 잘못은 감히 그런 덕성들이 공정보도와 숙의 과정 없이 발견될 수 있다고 보는 무류론(無謬論)적이며 독단적인 가정을 전제하는 데 있다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민웅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교수·언론학 minwl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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