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우찬제]포스트 수능, 삶을 기획하라

  • 입력 2007년 11월 17일 03시 01분


‘O자 마법’에 걸린 섬이 있다. 그 섬에서는 단어에 알파벳 O가 들어가면 먹거나 사용하거나 말할 수 없다. 옥수수(corn)나 감자(potato), 토마토(tomato)를 먹을 수 없고, 장미(rose), 코스모스(cosmos), 제비꽃(violet)을 기르거나 완상할 수 없다. 그 대신 O자가 들어 있지 않은 백합(lily), 라일락(lilac) 같은 꽃은 허용된다.

셰익스피어의 오셀로(Othello)도 상연할 수 없고, 바이올린(violin), 피아노(piano), 색소폰(saxophone) 같은 O자 악기도 뺏기고 만다. 음악에서 화음(harmony)이나 선율(melody)도 사라지고, 교향곡(symphony)도 연주할 수 없다.

이렇게 O자 마법에 걸린 사연은 단순하다. 리틀 잭과 블랙이라는 해적 두목들이 있었는데 이들이 평화로운 섬을 보물섬으로 오인해 기습한 것이다. 그런데 보물을 찾지 못하자 O자 분풀이만 한다. 이유는 블랙의 어머니가 O자 모양으로 동그랗게 뚫린 배 창문에 끼여 죽은 다음 블랙이 O자를 혐오했기 때문이다.

O자 마법 때문에 당하던 섬사람들은 더 그렇게 살 순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잃어버려선 안 되는 O자가 들어가는 낱말 네 개를 미션으로 상정한다. 우선 희망(hope), 사랑(love), 용기(valor) 등 세 낱말에 합의한다. 그렇다면 네 번째는? 사람들은 저마다 인간으로서 잃어선 안 되는 것들을 말한다. 담력(courage), 생각(thought), 이성(reason), 헌신(devotion), 일(work), 숭배(worship) 같은 단어들이 나열된다. 또 상상력(imagination), 명예(honor), 지혜(wisdom), 젊음(youth), 즐거움(joy), 승리(victory), 돈(money), 운(fortune) 등도 떠올려 보지만 앞의 세 낱말과 달리 쉽게 합의하지 못한다.

그 과정에서 믿음(faith), 진리(truth), 미(beauty)란 단어에 O자가 없음을 섭섭해하기도 한다. 그들이 결국 찾아낸 네 번째 단어는 자유(freedom)였다. 희망(hope), 사랑(love), 용기(valor) 그리고 자유(freedom), 이렇게 네 가지 ‘원더풀 O’를 찾아낸 그들은 ‘자유’의 소중함을 확인하고, ‘사랑’을 억압하는 해적들을 물리쳐야겠다는 ‘용기’와, 고난을 넘어 해낼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단합해 해적들을 섬에서 몰아낸다. O자 마법에서 풀려난 섬은 평화를 되찾는다. 마크 트웨인 이후 미국에서 크게 인기를 끈 유머 작가 제임스 터버의 우화 ‘원더풀 O’ 이야기다.

이틀 전 쌀쌀한 바람을 맞으며 수능 시험장을 나서는 젊은 그대들을 보며 문득 떠올린 이야기다. 많은 그대들의 표정은 어두웠으며, 발걸음이 무거워 보였다. 이제 그대들,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대들의 최종 목표가 대학 진학만은 아니었을 터. 이제부터라도 그대들의 삶을 가장 진실하게, 구체적으로 기획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존재했던 그 어떤 인간보다도 가장 업그레이드된 버전일 게 틀림없을 젊은 그대들이여. 당신들이 꿈꾸는 세상과 인간이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 무엇을 지키며 살아가야 할지, 이제 탐문하고 결단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을 위해 알파벳 O자가 들어가는 몇몇 단어를 더 생각해 보기 바란다. 터버가 제안한 네 가지 말고 당신들이 새로 제안할 수 있는 네 가지가 있을 것이다. 쉽지 않은 영어 시험을 치르고 나온 당신들에게 너무 재미없는 영어 숙제로 받아들여지지 않길 원한다.

우찬제 서강대 교수·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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