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홍찬식]일제시대의 재구성

  • 입력 2007년 8월 14일 20시 03분


코멘트
‘일제가 우리에게 준 유일한 선물은 가난이었다.’ 어느 교과서가 일제시대에 대해 내린 결론이다. 한 시대의 삶이 이렇게 간단하게 요약될 수는 없겠지만 우리의 보편적 정서와 일치하는 것도 사실이다. 일제시대라고 하면 가난 수탈 친일과 같은 어두운 단어들이 머리에 떠오른다. 나아가 우리는 일제시대를 가급적 거론하지 않으려 한다. 부끄러운 역사인 탓이다.

분노만으론 달라지지 않는다

오늘 광복절은 예외적으로 아픈 역사의 기억을 되살리는 날이다. 일제의 만행과 죄상이 공개되고 증언자들이 일본의 책임을 묻는다. 사람들은 이날만큼은 드러내 놓고 일본에 분노한다. 하지만 광복절만 지나면 일상으로 돌아가 버린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일반인에게 일제시대 역사는 공백 상태가 되고 있다. 정확한 실체를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하는 편이 맞다. 남는 것은 막연한 반일 감정이다.

역사에 대한 무감각은 최근 민주화기념관을 덕수궁 터에 지으려다 무산된 일에서 잘 드러난다. 원래 경운궁으로 불렸다가 고종의 궁호인 ‘덕수’를 따서 이름이 바뀐 이곳은 일제로부터 수난을 당한 대표적인 장소로 꼽힌다.

사실상 국권을 내준 1905년 을사늑약이 강요된 곳이다. 나라를 되찾기 위한 최후의 몸부림이던 1907년의 헤이그 특사 파견도 여기서 계획됐다. 궁궐 자리는 일제에 의해 절반 가까이 허물어져 나갔다. 민족을 내세우고 친일파를 꾸짖어 온 이른바 민주화 세력이 덕수궁 복원은커녕 이곳에다 자신들의 ‘공(功)’을 기리기 위한 건물을 세우려 했던 것이다. 역사에 무지(無知)한 현실이 암담한 느낌까지 들게 한다.

학계의 일제시대 연구는 새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학계의 주류 이론은 일제의 식민 지배에 초점을 맞춘 ‘수탈론’이다. 이에 맞서 ‘식민지근대화론’을 펴는 학자들이 학문적 성과를 내놓고 있는 것이다. 일제시대에 이르러 우리의 근대화가 시작됐다고 보는 게 ‘식민지근대화론’의 핵심이다.

지난해 서울대출판부가 펴낸 ‘한국의 경제성장 1910∼1945’는 각종 경제지표를 분석해 우리 경제가 일제시대에 연평균 3.7% 성장했다는 결론을 내놓았다. 당시 선진국들이 1% 정도 성장한 것과 비교하면 높은 수치다. 남북한 인구는 1910년 1633만 명에서 1940년 2430만 명으로 늘어났다. 인구 증가는 경제 사정이 나아졌다는 근거가 되기 때문에 ‘수탈론’의 관점에서 일제시대를 인식해 온 많은 사람에게 당혹감을 안겨 준다.

1920, 30년대의 신문 잡지를 섭렵하며 일제시대 사회사에 대한 저술을 내놓고 있는 전봉관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는 더 색다른 견해를 제시한다. ‘일제시대는 암울했던 시기가 아니라 자본주의가 뿌리를 내리면서 모든 것이 새로 시작되는 다이내믹한 시기였다’는 것이다. ‘경성기담’과 같은 그의 책들은 연극으로도 만들어지면서 문화계에 ‘경성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역사적 진실은 아마 ‘수탈론’과 ‘식민지근대화론’ 사이의 어디쯤엔가 있을 것이다. 최근 가열되고 있는 이들의 논쟁은 무엇보다 우리가 잊고 싶은 역사에 대한 관심을 되살린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광복절을 自省과 自矜의 날로

그동안 광복절이 분노 표출의 통로였다면 앞으로는 달라질 필요가 있다. 일제 침략에 자결로 맞선 매천 황현은 ‘국가는 필시 스스로 자기를 해친 연후에 남이 치고 들어온다’는 맹자의 말을 인용해 망국의 책임이 우리에게도 있다고 반성했다. 광복절에 한번 불끈 화내고 마는 것으로는 ‘남의 탓’에 그칠 뿐 역사에서 교훈과 지혜를 얻을 수 없다.

광복절을 다시는 나라를 빼앗기지 않도록 하는 성찰의 날로 바꿔 내야 한다. 내년엔 대한민국 건국 60년을 맞는다. 폐허 위에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한 희귀한 성공 사례인 우리의 건국에도 자부심을 갖는 날이어야 한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