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승련]권력보다는 양심을 따른 학자

  • 입력 2007년 8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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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30일자 뉴욕타임스엔 이라크전쟁에서 ‘미국이 이길지도 모른다’고 진단하는 기고문이 실렸다. 미국인 70%가 ‘수렁에 빠진 전쟁’이라고 반대하는 이라크전쟁에 낙관적 전망을 내놓은 필자는 민주당 성향의 싱크탱크 연구원 2명이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국방·중동 문제 전문가인 마이클 오핸런 선임연구원과 케네스 폴락 연구원은 7월 하순에 8일 동안 이라크 곳곳을 돌아다니며 전황을 파악한 뒤 이 글을 썼다.

오핸런 선임연구원은 대표적인 전쟁 비판론자로 꼽힌다. 2005년 여름부터 본보에 매달 1편씩 기고해 온 칼럼에서도 그는 이라크전쟁을 비판했다. 그러나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그는 ‘미군 병사의 사기가 충만했고’, ‘지방분권이 시작됐으며’, ‘최악의 치안 공백 지역이었던 곳을 (위험 없이) 걸어 다녔다’고 썼다.

CNN 방송은 이날 공동필자인 폴락 연구원을 출연시켜 “고작 8일을 다녀온 뒤 어떻게 상황을 아는가. 미군이 안내한 곳만 다녔다면 문제가 있지 않나”라고 따졌다. 폴락 연구원은 “내가 틀릴 수 있다. 하지만 지난번 방문 때와는 다른 무엇인가를 보았다”고 담담히 말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실패한 전쟁’을 살려내기 위해 6개월 전 미군 증파 결정을 내렸다. 반면 의회를 장악한 민주당은 10월 시작되는 2008회계연도의 전쟁예산을 ‘구체적 진전이 없다면’ 삭감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삭감 여부는 9월 중순 결정되므로 8, 9월 전황은 중요한 기준이 된다.

이런 판국에 민주당 성향의 두 필자가 “의회는 적어도 2008년 예산을 계속 줘야 한다”고 주장했으니 공화당으로선 뜻밖의 원군(援軍)을 얻은 셈일 것이다.

그들은 왜 이런 글을 쓴 것일까. “상황이 더는 악화되지 않았다”는 정도의 견해만 밝혔더라면 그동안의 이라크전쟁 비판을 번복하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궁금해서 오핸런 선임연구원에게 e메일을 보냈더니 “전쟁터에서 예상보다 상황이 호전된다는 근거를 많이 보았다. 나의 분석이 늘 확실한 논거를 바탕으로 하길 바랄 뿐”이라는 답장이 왔다. ‘팩트(사실)’의 신성함을 중시하는 그를 보며 학자적 양심이란 이런 것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권력의 손짓을 좇아 양심을 저버리는 것을 서슴지 않는 한국 내 일부 인사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김승련 워싱턴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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