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유윤종]‘종교적 인간’

  • 입력 2007년 6월 22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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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사람이 달에 가는 세상에 무슨 소리요?”

누군가의 등에 업혀 있었던 것 같다. 그 말마따나 하늘에 둥실 걸려 있던 보름달이 어제 일처럼 머리를 스친다. 여름밤, 아이를 업은 채 얘기를 주고받던 여인네들은 느닷없는 면박에 말을 멈췄다.

종교에 입문하라고 열을 올리던 이가 어떻게 대응했는지는 기억에 없다.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했던 게 1969년이었으니 등에 업힌 다섯 살짜리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대화였을 것이다.

38년이 지나 아이는 중년이 되었다. 달을 걷는 인간 얘기도 시큰둥해졌지만 전 세계에 걸쳐 종교의 위력은 쇠퇴하기는커녕 날로 강성해져만 간다.

“영국 정부가 결정을 철회하지 않으면 자살테러 공격도 정당화될 수 있다.” 테러 지도자의 말이 아니다. 파키스탄의 종교장관은 소설 ‘악마의 시’의 작가 살만 루슈디에게 작위를 수여하기로 한 영국 정부의 결정을 들어 18일 이같이 의회에서 공언했다. 이란의 한 이슬람단체는 ‘루슈디 살해 상금’을 10만 달러에서 15만 달러로 올린다고 밝혔다.

최근 뉴욕타임스는 이슬람 불문(不文) 율법이 테러 과정에서 민간인의 희생도 정당화한다고 전했다. 악마에 대한 투쟁에서 생기는 무고한 희생자는 천국으로 보내진다는 가르침 때문이다. 이는 테러리스트들이 공공장소에서의 무차별 살육도 꺼리지 않는 이유를 간단히 설명해 준다.

터키의 친이슬람 여당은 7월 총선에서 세속주의 야당에 압승을 거둘 것으로 전망된다. 세속주의를 국가의 토대로 규정한 국부(國父) 무스타파 케말의 사후 60년이 가까운 오늘날, 국부보다 신에 대한 외경이 더 크게 터키인들을 흔드는 모습이다.

비(非)이슬람 세계에서도 종교의 위력은 한층 커진 듯하다. 5일 미국 맨체스터에서 열린 공화당 대선후보 TV 토론회의 화두는 ‘신’이었다. 한 후보는 ‘진화론을 믿느냐’는 질문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했다’고 답했다. 후보 10명 중 ‘진화를 믿지 않는다’는 의견을 밝힌 후보가 3명이었다. 갤럽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절반은 이들과 같은 의견이다.

진화생물학의 선두주자인 리처드 도킨스는 최근 신간 ‘신(神)이라는 착각’에서 ‘극단적이지 않은 종교조차 위험하다’고 공격했다. 그러나 그가 인정해야 할 일이 있다. 우리에게는 ‘종교적 인간(Homo Religiosus)’의 속성이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세상의 성립과 현세·내세를 묶는 자신의 운명, 죄로부터의 구원까지를 일관되게 설명하는 체계에 곧잘 매혹된다. 이 사실은 오늘날의 기술과 물질문명 시대에도 흔들림이 없어 보인다.

문제는 ‘내’가 말하는 신과 ‘네’가 말하는 신이 서로 달라 충돌을 빚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세계를 어떻게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독일의 18세기 극작가 겸 사상가 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싱은 이 문제에 지혜로운 판결을 내린 바 있다. 한 왕가가 대대로 가장 덕이 높은 아들에게 오팔 반지를 물려 내려왔다. 그런데 어느 왕이 복제품 반지를 두 개 만들어 진품과 함께 세 아들에게 각각 주었다. 누구의 반지가 진짜일까.

레싱은 ‘자신의 행실로써 가장 덕이 높음을 입증할 아들의 반지가 바로 진짜’라고 말했다. 이와 같이 각각의 종교도 인간 사회에 주는 선과 광명을 통해 자신의 믿음이 진실임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라는 비유였다.

유윤종 국제부 차장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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