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하종대]中황쥐 사망 155자 보도통제

  • 입력 2007년 6월 4일 02시 59분


중국 공산당 권력서열 6위인 황쥐 국무원 부총리가 사망한 뒤 3일까지 중국 대륙의 언론이 보도한 내용은 오직 당국이 공식 발표한 ‘부고(訃告)’ 하나다.

중국 공산당과 전국인민대표대회, 국무원,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가 공동으로 발표한 이 부고문은 20자로 된 제목을 제외하면 겨우 155자. 중국의 대표적 언론인 관영 신화통신은 물론 베이징 시민들이 많이 읽는 베이징칭녠보나 신징보도 내용은 똑같다.

하지만 홍콩과 대만, 싱가포르의 중화권 언론은 황 부총리가 숨진 2일부터 시시각각 새로운 뉴스를 전하고 있다.

이들 언론은 황 부총리의 사망 원인과 투병 과정은 물론 ‘상하이방의 좌장’으로 불리던 그의 사망으로 상하이방의 몰락이 가속화되고 후진타오 지도부에 대한 장쩌민 전 주석의 영향력이 줄어들면서 후 주석의 권력기반이 굳건해질 것이라는 심층 분석까지 내놓고 있다.

‘아마추어 가수’로 불릴 만큼 노래를 잘하고 특히 고음 처리가 강한 황 부총리가 노래를 부를 만한 자리라면 한 곡조 뽑는 것을 절대로 사양하지 않았다는 일화부터 1995년부터 그와 아내 쉬후이원 여사가 상하이 시 자선기금회에 해마다 한 달치 월급을 쾌척해 왔다는 얘기도 있다.

심지어 그가 지도자 반열에 오른 뒤 아내에게 12자의 ‘진구저우(緊고呪·서유기에서 삼장법사가 손오공의 머리에 씌운 금테를 조일 때 사용하는 주문)’를 줬다는 내용도 있다. ‘서민은 돌보되 정치에 간여하지 말고, 일은 많이 하되 언론에 적게 노출돼라’는 주문이다. 황 부총리의 사망을 애석해하는 상하이 시민의 반응도 있다.

중국 당국은 이런 황 부총리 관련 보도를 인터넷에서 모두 차단했다. 친중국계 중화권 언론매체의 인터넷에서도 그의 사망 관련 소식은 찾기가 쉽지 않았다. 어쩌다 인터넷에 보였다가도 곧바로 차단됐다.

황 부총리의 사망을 중국 정부가 얼마나 민감하게 받아들이는지 잘 보여 주는 대목이다. 혹시라도 황 부총리의 사망을 계기로 그동안 장 전 주석과 후 주석 간의 보이지 않는 갈등이 있었다는 게 드러날까 봐 두려웠던 걸까.

계획경제를 버리고 시장경제를 도입한 지 어언 29년. 그 사이 중국 경제규모는 무려 57.5배나 늘었다. 하지만 언론 분야는 여전히 ‘통제와 탄압’이라는 계획경제 때의 구태를 벗어나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다.

하종대 베이징 특파원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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