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서영아]“요즘 일본이 이상해”

  • 입력 2007년 5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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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쯤 전 제럴드 커티스 컬럼비아대 교수와 함께 도쿄 긴자(銀座)의 작은 식당을 찾았다. 10명이면 꽉 들어차는 식당에는 마침 이곳의 단골인 가토 고이치(加藤紘一) 전 자민당 간사장 일행이 앉아 있었다. 3자 모두 구면인지라 합석했다. 왁자지껄 분위기가 무르익은 뒤 화제는 ‘요즘 일본이 이상하다’는 이야기로 옮아갔다.

마침 국회에서 개헌 전 단계인 국민투표법안이 통과된 직후였다. 수십 년간 일본 정치를 연구해 온 커티스 교수도 “최근 일본이 어디로 가려 하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일본인은 기쁨도 슬픔도 분노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인으로서 기자가 일본 정치를 보는 감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기자가 “명료한 설명 없이 누군가 깃발을 들면 따라 흘러가 버리는 식이어서 위험해 보인다”고 말하자 가토 전 간사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고뇌에 차 있었다. 자민당 내에서 날로 오른쪽으로 향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를 견제하기 위해 아시아 중시 외교를 주축으로 한 대(對)북한 대화론을 제기하며 ‘반(反)아베 전선’을 이끌어 왔고 5월 초 연휴에는 야마사키 다쿠(山崎拓) 전 자민당 부총재와 함께 중국과 한국을 돌고 왔다. 그 자리에서는 ‘탈당을 하건 정계개편에 나서건 뭔가 움직여야 한다’는 주문이 그를 향해 나오기도 했다.

그 무렵 미국과 중동 순방에 이어 국민투표법안을 통과시킨 아베 총리의 눈빛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취임 이래 속속 터져 나오는 정치자금 의혹에는 늘 마쓰오카 도시카쓰(松岡利勝) 농림수산상이 끼어 있었지만 아베 총리는 강경한 표정으로 “별문제 없다”를 반복했다.

지난해 말 정치자금 허위 보고 문제로 여론에 밀려 사다 겐이치로(佐田玄一郞) 행정개혁상을 해임한 뒤 내각이 휘청하는 경험을 한 탓에 이번에는 물러서지 않으려 한다는 해석이 많았다. 그리고 그렇게 잘돼 가는 걸로 보였다.

이런 아베 총리의 표정이 바뀐 것은 28일 오후 마쓰오카 농림수산상의 자살 소식을 들은 직후였다. 현직 관료의 자살이란 중압감이 클 뿐 아니라 국회에서 ‘뻔한 거짓말’을 반복하는 마쓰오카 농림수산상을 경질해야 한다며 여당 내에서조차 무성했던 목소리를 외면한 책임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29일 밤에는 고인과 절친했던 스즈키 무네오(鈴木宗男) 의원이 “고인이 생전에 ‘국민 앞에 나서 의혹을 해명하고 싶지만 당의 정책 방침은 침묵을 지키라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자민당도 총리도 즉각 부인했지만 찜찜한 분위기는 가시지 않는다.

규마 후미오(久間章生) 방위상도 “(마쓰오카는) 전진도 후퇴도 지옥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라며 “그만두면 간단했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일부 언론은 마쓰오카 농림수산상의 자살에는 자신을 각료로 발탁하고 비호해 준 ‘주인’ 아베 총리에 대한 의리가 작용했다고 해석했다. 마쓰오카-아베 관계는 이미 1997년 ‘일본의 앞날과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의원 모임’ 시절부터 정치적 동지 색채를 띠고 있었다. 그는 유서 말미에도 ‘아베 총리와 일본 만세’라고 썼다.

그러나 마쓰오카 농림수산상의 의도야 어찌 됐건 아베 정권은 정권의 명운이 걸렸다는 7월 22일 참의원 의원 선거까지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상태에서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문제는 대안이 있느냐다. 자민당에 대해 고개를 젓는 일본인들도 최대 야당인 민주당에는 그다지 신뢰감을 갖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한 정치 일정 속에서 앞으로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지만, 그날 긴자의 식당에서 일본의 정치인과 미국인 학자, 한국인 기자가 입을 모아 걱정했듯 일본이 더는 ‘이상해지지’ 않기를 빌고 싶은 마음이다.

서영아 도쿄 특파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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