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경민]발등의 불 ‘에너지 외교’

  • 입력 2007년 4월 2일 03시 00분


세계 석유와 천연가스의 5%가 매장된 중앙아시아의 카스피 해를 둘러싼 미국 러시아 중국의 에너지 전쟁에 인도에 이어 유럽연합(EU)이 가세했다. EU가 가세한 이유는 러시아가 2006년 1월 우크라이나로의 천연가스 공급을 줄인 데 따른 불똥이 유럽 전역으로 튀어 에너지 공급 위기를 겪었기 때문인데 러시아는 친(親)서방으로 돌아선 우크라이나가 눈에 거슬린 것이다.

미-러 新냉전… 중 일 EU도 가세

에너지를 무기로 하는 신(新)냉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미-러 간의 대립이 심상치 않다. 실제로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올해 2월 1일 크렘린 궁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미국의 대(對)러시아 견제 정책에 대응할 수단으로 에너지 자원을 시사했다. 러시아의 앞마당이나 다름없는 폴란드와 체코에 미사일 방어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미국에 에너지를 무기로 대항하겠다는 것이다.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그랬듯이 천연가스를 무기화해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러시아의 행보는 EU로 하여금 생존을 위해 카스피 해 연안 국가와의 군사 및 경제 협력을 통해 에너지 자원을 확보하도록 만들었다. 과거에는 돈만 있으면 에너지 자원을 살 수 있었으나 이제는 선물 보따리를 들고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자원이 부족한 한국이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꼴이 되지나 않을지 근심이 크다.

에너지 자원을 닥치는 대로 확보하려는 중국은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가릴 것 없이 전 방위적 에너지 외교에 나서고 있다. 에너지 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중국의 외교는 정부와 국영 기업이 긴밀하게 협력하는 가운데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에너지 자원 확보의 최전선에 서 있는 중국해양석유(CNOOC), 중국석유천연가스(CNPC), 중국석유화공(Sinopec) 등 3대 국영 회사는 정치적 입김이 대단하여 이들의 제안으로 에너지 수뇌 외교가 이루어질 정도이다. 석유 3사가 정부와 당에 에너지 외교에 대한 의견을 품신하면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을 좌장으로 하는 공산당 정치국에서 심사하고, 정책에 반영되는데 에너지 외교의 총사령탑은 ‘국가 에너지 지도자 그룹’의 대표를 맡고 있는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이다.

2030년 에너지 계획을 마련한 일본의 에너지 정책에서도 에너지 외교가 주요 과제로 올라 있을 만큼 세계는 에너지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액화천연가스(LNG)의 25%를 인도네시아에서 구매하는 일본은 최근 계약 갱신 과정에서 인도네시아에 투자를 많이 하는 중국에 구매량 절반의 권리를 넘겨주어야 했을 정도로 중국의 에너지 외교는 공세적이다. 인도네시아 경기가 침체하자 투자 규모를 25%로 줄인 일본과는 달리 중국은 과감하게 투자를 늘려 인도네시아 정부의 호감을 샀다.

미국은 석유 수입 의존도의 위기의식을 느끼고 탈(脫)석유정책과 함께 2050년에는 전체 에너지의 50%를 원자력 발전을 통해 조달한다는 계획을 세워 놓고 있다. 1979년 스리마일 섬 원전 사고 이후 28년 만에 원자력 정책을 부활시켰다. 미국은 일본의 미쓰비시 중공업으로부터 6조 원에 이르는 원자로 2기의 구매를 결정했고 일본으로서는 역사상 최초로 순 국산 원자로를 수출하게 된다.

부존자원 없는 한국의 현주소는?

1, 2차 오일쇼크를 심하게 겪은 영민한 일본은 원자력을 근간으로 하는 2030년 에너지 계획을 세워 놓고 공급의 안정을 도모하고 있다. 정치권도 앞장서서 에너지 문제를 고민하는 중이다. 일본의 국회의원 103명은 ‘자원에너지 장기정책 의원연구회’를 발족하고 2100년의 일본 에너지를 고민하는 장기 대책 마련에 돌입했다. 이런 마당에 부존자원이 전무하다시피 한 한국은 정계와 재계가 힘을 합쳐 에너지 자원 공급이 비교적 안정적인 원자력을 근간으로 한 에너지 외교를 서둘러 강화해야 할 것이다.

김경민 한양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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