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코끼리 모독’

  • 입력 2007년 3월 31일 03시 19분


코멘트
◇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코끼리 모독/랠프 헬퍼 지음·김석희 옮김/400쪽·9800원·동아시아

이 이야기는 얼핏 평범해 보인다. 동물과 인간의 우정. 그런데 뜨끈한 무엇이 있다. 화려한 수사도 없고 내용이 톡톡 튀는 것도 아니지만 ‘감동적인 얘기라는 게 이런 것이었지’ 하며 무릎을 치게 한다.

이야기는 ‘출생’에서 시작된다. 결혼 10년 만에 세상에 나온 사내 아이와 잘생긴 아기 코끼리. 둘은 1896년 봄 독일의 작은 마을에서 한날한시에 태어났다. 장소는 3대째 서커스단에서 동물을 조련하는 조련사 요제프 군터스타인의 농장. 남자의 이름은 브람, 코끼리의 이름은 모독이다. 출생부터 운명의 끈으로 묶인 데다 유년시절부터 서로를 아끼고 따르면서 브람과 모독은 깊은 유대감을 쌓는다.

동물과 인간의 순수한 우정을 가로막는 것은 인간의 과도한 욕망이다. 모독을 서커스 하는 코끼리로 키우는 게 소년 조련사 브람의 꿈이다. 그러나 서커스단의 소유주 고벨은 재정난을 이유로 미국 뉴욕의 서커스단에 동물을 팔아넘긴다. 설상가상으로 병에 시달리다 죽음이 가까워 온 아버지는 아들에게 모독을 평생 잘 돌봐 달라고 당부한다.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브람은 모독이 탄 배에 몰래 오른다.

배가 난파해 바다를 떠돌다가 인도 해안에 이르러 간신히 목숨을 건지는 브람과 모독. 군주의 양자로, 부족의 재간둥이로, 자본가에게 쫓기는 도망자로 자리를 바꾸면서 둘은 ‘믿을 수 없는’ 고난과 모험을 겪는다. 읽다 보면 어느새, 도망치던 코끼리가 총에 맞아 다칠 때 마음이 아프고 붙잡혀 갇힐 때는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낀다. “자연은 하나의 목소리를 듣고 거기에 복종합니다. 1만 마리의 새가 호수에서 동시에 날아올라도 서로 부딪치지 않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지요. 인간은 자기 목소리만 듣습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부딪칩니다”라는 소설 속 교훈이 가슴 뭉클하게 와 닿는다. 모독과 브람을 괴롭히는 사람들에게 분개하다가, 그들이 실은 우리 자신의 모습과 다를 바 없어서 부끄러워진다.

기교를 부리지 않는 이야기에 처음엔 멋없는 게 아닌가 싶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순정한 감동으로 마음이 따뜻해지는 ‘모독’ 이야기. 너무나 소설적이어서 내용만 놓고 보면 ‘아니, 이런 고색창연한 상상력이라니’라고 생각할 법하다. 그런데 이 얘기는 실화다. 모독은 미국에서 서커스 공연과 영화 촬영으로 이름을 날린 재주 많은 코끼리였으며 그 뒤에는 뛰어난 조련사 브람이 있었다. 할리우드의 동물 조련사인 랠프 헬퍼가 브람에게서 ‘소설 같은’ 인생역정을 듣고 기록한 게 이 책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코끼리 모독’이다. 워낙 유명했던 동물인 만큼 책이 나왔을 때 큰 화제가 됐다. 모독은 1975년 78세로 죽었으며 그때까지 인간을 제외한 포유류 중 가장 오래 산 동물로 기록됐다. 원제 ‘Modoc: The True Story of the Greatest Elephant That Ever Lived’(1997년).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