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승련]美대북정책 ‘성과 매달리기의 함정’

  • 입력 2007년 3월 30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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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가 던진 공이 아슬아슬하게 스트라이크 존으로 들어왔지만 심판은 볼로 판정해 버렸다. 만약 다음 공이 어중간하지만 분명한 볼이었다면 심판은 어떻게 선언해야 할까.

라디오로 야구중계를 듣던 시절, 해설을 하던 고(故) 김동엽 씨는 이런 비유를 곧잘 들려줬다. 그는 “먼젓번 공은 잊어라. 당연히 ‘볼’이 맞다. 균형을 맞추려 한다면 두 번 잘못을 저지르는 게 된다. 한 번이면 족하다”고 말했다.

미국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북한과 2·13 베이징 합의에 서명한 내용을 듣고 이 말을 떠올렸다. 2차 핵 위기 4년 내내 강경 원칙론을 앞세워 주고받기 협상을 거부해 왔던 게 부시 행정부다. 협상 당사자인 국무부는 “그래도 대화와 타협이 필요하다”며 승산 없는 물밑 싸움을 했다. 백악관은 스트라이크가 들어왔지만 오른손을 들지 않은 심판과 같았다.

그러던 부시 행정부가 이번엔 180도 변신을 했다. 북한의 핵실험(2006년 10월), 공화당의 중간선거 패배(11월), 이라크전쟁의 돌파 시도 결정(12월) 과정을 거치며 생긴 일이다.

영변 원자로 동결 정도의 성과를 얻는 대가로 부시 대통령은 ‘뚜렷한 설명도 없이 원칙을 버렸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물론 만시지탄(晩時之歎)이란 평가도 분명히 존재함을 모르지 않는다.

4년간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남은 2년은 또 다른 성급한 판정이 내려질까 걱정이 앞선다. 김동엽 씨는 “먼젓번 공은 잊어라. 안 그러면 두 번 실수한다”고 했다.

지난주 북한 협상대표는 베이징까지 날아갔지만, 엉뚱한 주장을 내세우며 ‘호텔 밖’으로 나오지도 않았다. ‘성과에 매달리기’가 부른 해프닝 같아 걱정하는 워싱턴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26일 동아일보가 후원한 워싱턴 국제학술회의장에서 한미 양국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며 고민하던 자리에서도 부조화는 목격됐다. 6자회담 미국 차석대표인 빅터 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은 “좋은 결과”라고 평가했고, 합리적 목소리를 내 온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고문은 오히려 “걱정된다”고 했다.

이들은 부시 백악관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대통령에게 북한정책을 2인 3각으로 조언하던 사이다. 이들의 견해차는 부시 행정부 내의 혼돈스러운 기류를 그대로 보여 주었다.

김승련 워싱턴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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