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政治하려면 교수·CEO·종교인 모자 벗고 해야

  • 입력 2007년 3월 25일 23시 19분


범여권의 지리멸렬한 상태가 이어지자 이른바 진보개혁 성향의 종교계 인사와 범여권 대선주자, 정당 대표가 참여하는 ‘대통합 원탁회의’가 출범할 모양이다. 원탁회의 추진 작업은 ‘민족과 화해와 통일을 위한 종교인협의회’ 소속 목사 신부 승려들이 주도하고 있다.

인류 문명사를 종교와 세속 정치가 분리되는 긴 과정으로 파악하는 관점도 있다. 한국이 군사독재의 질곡에 갇혀 있을 때 종교인들이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것은 공감을 살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민주화 20년을 맞는 지금 종교인이 현실 정치에 관여하는 것은 성직자로서 금기해야 할 파당적(派黨的) 활동으로 인식될 소지가 있다. 진보를 자처하는 종교인들이 범여권 결집을 위해 나선다면 보수 종교인들도 좌파 정권 종식을 부르짖으며 뭉칠 수 있다. 결국 세속 정치를 둘러싸고 종교계가 양분되는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이 벌어질 우려가 있다.

원탁회의 준비 모임은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과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을 참여시킬 계획이라고 한다. 정 전 총장은 전국을 순회하는 강연정치를 통해 사실상 대선행보를 하면서도 출마에 관한 질문을 받으면 햄릿형 대사로 핵심을 피해 간다. 정치와 대학에 양발을 걸치는 모습이 여느 폴리페서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충청도 출신이라서 덕 본 것도 많아 갚으려고 한다” “충청인이 나라 가운데서 중심을 잡아 왔다”며 출신지역과 관련한 발언을 거듭했다. 범여권의 호남 컬러에 충청 후보가 결합하면 ‘서부연합’ 대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새 정치를 하겠다는 대학 총장 출신이 기성 정치인들도 삼가는 지역주의 행태를 보이는 것이 실망스럽다.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은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범여권 통합과 관련해 “심청이 아버지 눈 뜨듯 세계의 변화를 보게 하느냐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고경영자(CEO)가 본연의 기업 경영보다 정치권 주변에 어른거리며 정치평론을 일삼는데도 기업이 제대로 돌아가는지 모르겠다. 세계에 이런 CEO 유형이 존경받는 나라가 있는가. 정치 CEO가 주주들의 성실한 대리인인지도 의심스럽다.

종교인이나 정, 문 씨가 정치를 하지 말라는 법이 없지만 현실 정치에 몸담으려면 성직자 대학교수 CEO의 모자를 벗고 당당하게 참여하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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