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김기현]도용 일쑤 주민번호 ‘보안증’으로 적합한가

  • 입력 2007년 3월 15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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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제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한 것 같아요. 범인을 찾아서 처벌해 주세요.”

12일 시작된 ‘주민등록번호 클린 캠페인’이 주관 기관인 행정자치부의 홈페이지를 하루 동안 마비시킨 데 이어 ‘불똥’이 경찰청 사이버수사대로까지 옮아 붙었다. 본인의 주민번호 이용 명세를 확인해 보고 기억에 없는 사이트에 가입돼 있거나 실명인증을 한 결과를 찾아낸 시민들의 수사 의뢰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사이버수사대로서는 난감하다. 대부분의 경우 주민번호 이용 명세만을 근거로 범인을 찾아내기는 쉽지 않다. 범인을 잡아도 법 적용 시점 때문에 다 처벌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주민번호의 단순 도용을 처벌할 수 있도록 주민등록법이 바뀐 것은 지난해 9월이기 때문이다.

원하지 않는 사이트에서 탈퇴하려고 하지만 이미 사이트가 문을 닫았다거나 사이트 탈퇴를 위해서 신분증 사본을 팩스로 보내 달라는 해당 업체의 요구에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는 문의도 이어지고 있다.

주부 김모(38) 씨는 캠페인 소식을 듣고 호기심으로 남편의 주민번호 이용 명세를 몰래 조회해 보고는 성인 사이트를 이용한 기록이 나오자 당황했다. 남편과 중학생 아들을 번갈아 의심하면서도 사실을 털어놓을 수 없어 답답한 마음뿐이다.

이번 캠페인은 개인정보 보안에 대한 의식을 높이자는 선의에서 시작됐다. 14일에도 50만 명 이상이 캠페인 메인 페이지에 접속했고 포털 사이트의 검색어 상위 순위에 오를 정도로 폭발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주민번호 유출에 대한 우리 사회의 불안감이 높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한 것 말고 무슨 성과가 있었는지 의심스럽다.

행자부 관계자들은 “이렇게까지 관심이 높을지는 몰랐다”며 당황하는 표정이다. 이런 ‘후폭풍’은 애당초 예견하지 못한 것 같다.

물론 정부 탓만 할 것은 아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자신의 주민번호를 알려주는 데 거리낌 없었을 정도로 너나 할 것 없이 무신경했기 때문이다.

이번 해프닝은 전 국민의 신상을 일련번호 하나로 관리하는 주민번호 제도가 과연 수시로 방호벽이 뚫리는 디지털 시대의 ‘보안증’으로 적합한 것인가를 근본적으로 반문하게 했다. 온라인에서라도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할 수 있는 주민번호 대체 시스템의 개발을 서둘러야 한다.

김기현 사회부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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