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권순택]代行시대

  • 입력 2007년 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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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수속 대행업체 D사 대표 이형권(34) 씨의 사업 아이디어는 ‘이혼하고 싶어도 시간이 없어 못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바쁜 직장인과 맞벌이 부부가 많은 현실에서 나왔다. 법정에서 다투는 소송 이혼은 변호사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쌍방이 동의하는 협의 이혼은 몇 가지 서류만 당사자가 법원에 제출하면 된다. 이 씨는 이혼 신청에 필요한 서류를 관공서에서 발급받고 일부는 직접 작성해 주는 사업이 잘될 것으로 보고 2년 전 창업해 성공했다. 당시 3, 4개에 불과했던 이혼 수속 대행업체는 지금 전국에 수십 개로 늘어났다.

▷장을 봐서 배달해 주는 서비스부터 이혼서류 준비까지, 애인 역할부터 부모 대역까지 생활에 필요한 소소한 일을 대신해 주는 생활 대행사업이 성업 중이라고 한다. 집이나 술집에 놓고 온 서류나 물건을 갖다 주는 대행업체까지 생겨났다. 비서가 따로 없다. 산소의 벌초를 대행업체에 맡기는 사람을 주변에서 보기도 한다. 따지고 보면 부모와 학교의 역할이었던 자녀 교육을 떠맡은 사교육이나 대리운전도 대행사업에 속한다.

▷못하는 게 없다는 역할 대행업은 TV 드라마 ‘소문난 칠공주’에도 등장했다. 애인이나 결혼식 하객 역할 대행은 기본에 속한다. 부모에게 알리기 곤란한 잘못을 저지른 학생이 업체에서 소개해 준 대행부모를 학교에 모시고 가는 일도 있다니 대행의 한계가 어딘지 모르겠다. ‘안 되는 게 어디 있니’라는 유행어가 실감나는 대행시대에 살고 있는 셈이다.

▷전체 가구 중 독신가구가 2000년 15.5%에서 2005년 20%로 증가했다. 이 또한 대행시장이 커지는 요인이다. 시간의 효율적 활용이란 측면에서 대행사업은 시(時)테크 사업이기도 하다. 대행업체 이용은 직접 일을 처리할 때보다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이 적다는 점에서 삶의 지혜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벌초나 부모 역할처럼 정성으로 해야 할 일까지 대행으로 처리하는 세태는 돈이면 다 된다는 사고방식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권순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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