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신인석]‘소득 2만 달러’에 대한 단상

  • 입력 2007년 1월 17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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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소득 1000불, 수출 100억 불’이라는 문구가 학교 담벼락에 선명하던 1970년대를 살아온 세대는 어쩔 수가 없다. 차 안에서도 ‘올해 국민소득이 얼마’라는 라디오 뉴스가 들려오면 귀가 쫑긋 선다. 성적표를 마주한 후에 오는 예의 궁금증도 뒤를 잇는다. ‘이게 잘한 편인지, 옆집 친구는 몇 점을 받았는지. 전교 1등은 누구이고 공부 비결은 무엇인지….’ 올해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2만 달러를 넘을 것이다. 이에 대한 일부의 반응도 ‘이게 내 성적 맞는가, 환율 덕 아닌가’ 하는 것이다.

각국의 소득을 비교할 때 가장 골치 아픈 것이 환율이다. 환율이 각국의 물가수준을 정확하게 반영해 주면 좋을 텐데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제학자들은 소득 비교 시 각국의 물가수준을 기초로 하여 만들어진 ‘가공의 환율’을 사용한다. ‘구매력 평가 환율’이라는 것인데, 이 환율로 계산한 1인당 국민소득은 각국의 진짜 경제 실력을 꽤 잘 반영한다.

구매력 평가 소득으로 가장 최근의 통계는 지난해 9월 국제통화기금(IMF)이 내놓았다. 이에 따르면 2만 달러는 현재 우리 경제의 실력이 맞다. 정확하게 말하면 2년 전 실력이다.

구매력평가 소득은 2005년 달성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1994년에 1만 달러, 11년 뒤인 2005년에 2만 달러에 도달했다는 것이 IMF의 계산이다. 흔히 G7으로 불리는 선진 7개국의 국민소득이 1만 달러에서 2만 달러까지 늘어나는 데 걸린 기간은 평균 12.5년이다. 제일 짧은 기록은 일본의 10년이고, 프랑스의 15년이 최장이다. 한국의 11년은 일본에는 뒤지고 독일과 동급인 ‘역대 2위’ 기록이다. 지난 몇 년 4.5% 내외의 성장률이 우리에게는 불만스럽기도 하지만, 선진국 중 1만 달러 소득 수준에서 그 정도 성장한 나라도 많지 않다.

일본의 1인당 국민소득은 2005년 현재 3만 달러가 조금 넘는다. 일본의 1인당 국민소득이 한국보다 높아진 것은 조선 중기인 16세기 무렵으로 추정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발표한 추정치에 따르면 일본 경제는 그때부터 1900년까지 ‘당시 기준으로는’ 고도성장인 연 1%의 성장을 지속한 반면, 한국은 중국과 함께 0% 성장에 머물렀다. 그 결과 조선이 식민지가 된 1910년 일본의 1인당 소득은 조선의 1.5배였다. 두 나라의 소득격차가 크게 확대된 것은 광복 직후 20년간이다. 일본은 전후(戰後) 산업화로 고도성장을 지속한 반면, 한국은 광복 정국과 6·25전쟁으로 나라 모양을 유지하기에 급급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박정희 정부 때 비로소 성장궤도 진입에 성공했고 이후 40년간 성공적으로 추격해 왔다. 두 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 격차는 1970년 무렵의 5배가 가장 컸고, 1980년 3.5배, 1995년 2배, 2005년 1.5배로 줄어들었다. 지금 추세가 유지된다면 앞으로 한 세대가 지나기 전 500년에 걸친 대(對)일본 경제 열위가 해소되는 셈이다.

수백 년의 경제 열위를 현대에 와서 역전시킨 사례는 실재한다. 2005년 1인당 국민소득이 4만 달러를 넘는 국가로 중동 산유국을 제외하고 룩셈부르크, 노르웨이, 미국, 아일랜드 등이 있다. 이 중 신데렐라는 아일랜드다. 아일랜드와 영국의 역사는 한일 관계를 방불케 하며 아일랜드 민요의 비감함은 우리의 한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아일랜드는 1970년대 추격을 시작해 1995년에는 영국을 따라잡았고 이제는 ‘최고소득 국가’ 반열에 올라 있다.

영국 뛰어넘은 아일랜드의 도약

비결이 뭘까. 1970년대 추격의 전기는 영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과 유럽연합(EU·당시에는 EC) 가입으로 마련됐다. 북미와 유럽의 중간에 위치한 지리적 이점, 영어 사용 가능국이라는 문화적 이점 등을 활용하여 ‘허브 전략’을 추진한 것이다. 1990년대 이후 세계경제의 통합이 가속화되면서 아일랜드의 전략은 눈부신 열매를 거두고 있다. 외국 기업의 진입이 이어지고 있을 뿐 아니라, 한때 국제경쟁의 여파로 구조조정에 시달리기도 했던 국내 산업도 비교우위 부문을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다. 아일랜드가 도약하기 시작한 1970년대 영국은 ‘영국병’으로 알려진 기간산업 강성 노조의 파업 고질병으로 경제 활력을 소모하고 있었다.

거울을 한번 들여다보자. 2007년의 한국은 아일랜드에 가까운가, 영국에 가까운가.

신인석 객원논설위원·중앙대 교수 ishin@ca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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