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영균]세금을 위한 정치, 정치를 위한 세금

  • 입력 2006년 12월 17일 20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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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종합부동산세 자진 신고 마지막 날에 서울 시내 한 세무서에서는 고성이 오갔다고 한다. 세무서 측은 따로 방을 마련해 납세자들을 안내하고 있었는데 연세가 지긋한 노신사 몇 분이 큰소리로 부당하다며 항의했다. ‘내가 공직생활만 30년 넘게 하고 아파트 장만해서 십수 년을 살고 있는데 이게 투기란 말이냐’는 요지였다. 올해 종부세를 내야 하는 35만 명의 대부분이 아마도 이 노신사와 비슷한 심정일 터이다.

같은 날 서울 행정법원에서도 종부세가 심판대에 올랐다. 하지만 서울 강남에서도 집값이 가장 비싸다는 아파트의 주민 85명이 낸 종부세 위헌제청신청에 대해 기각 결정이 내려졌다. 결론은 ‘종부세가 사유재산권 자체를 부인하거나 재산권 등 헌법상 기본권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한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종부세를 내지 않는 사람들의 여론도 이와 비슷하다. 집값이 수억 원씩 올랐는데 집값 상승분의 1∼2%밖에 되지 않는 세금을 내는 게 당연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동안 종부세에 대해 반대하는 듯하던 야당도 방침을 바꿨다. 문제가 있다고 보았던 종부세의 가구별 합산 과세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기로 했다. 아마도 ‘부자를 위한 당’이라는 이미지가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내년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 야당으로서 35만 명을 위한 결정은 애당초 불가능했다.

행정법원의 결정이나 야당의 방침 전환에도 불구하고 종부세 납세자들의 위헌제청은 계속될지도 모른다. 실제로 여러 곳에서 위헌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법원과 정치권이 손을 들어 주지 않는 데다 언론도 그리 우호적이지 않아 종부세 반대운동은 외로운 투쟁이 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

내년에는 종부세가 더 격렬한 논란거리가 될 것 같다. 종부세 부과 시점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때다. 대통령 선거 직전이어서 아무래도 논란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 올해 급등한 집값이 반영되고 과표 적용률이 높아져 부과 대상자와 세액이 올해보다 대폭 늘어난다. 여당이건 야당이건 유권자의 일부인 종부세 부과 대상자의 편을 들어줄 수가 없다. 집값이 크게 오른 버블 세븐 지역 출신 국회의원들만이 반대 의견을 낼 수 있으리라.

종부세 납세자들이 원하든 원치 않든 종부세는 세금의 논리를 벗어나 정치이슈가 되어가고 있다. 조세원칙과 법에 따라 세금을 부과한다고 주장하는 경제부처와 국세청도 청와대와 여당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을 터이고, 정치권은 두말 할 나위도 없다.

2002년 대선 때 어느 후보가 부유세를 선거 공약으로 내걸었던 적이 있다. 소수당 후보인데다 인기영합적인 공약이라는 평가를 받아 당시에는 그리 환영을 받지 못했다. 종부세는 바로 부동산 부자 35만 명에 대한 부유세다. 부동산 가격의 안정이 종부세 도입의 주요 취지지만 이제는 부유세 성격이 짙다.

소수의 부자들에게 세금을 매기는 문제에 대해 다수 국민은 대개 찬성할 것이다. 남이 세금을 내면 내가 내야 할 세금이 그만큼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특정 소수 집단에 매기는 세금을 다수결로 정해서는 곤란하다. 자동차세 아파트세 담배세 등등. 이런 식으로 하다간 모피세 골프세 요트세 가발세 등 각종 행정편의주의적인 세금이 등장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결국 ‘나’에게도 피해가 돌아올 수 있다.

세금을 무리 없이 잘 걷어 긴요한 일에 쓰는 것이 정치의 주요 임무다. 정치를 위해 세금을 걷기보다는 세금을 위한 정치가 필요하다. 세금 문제는 다수결보다는 조세원칙에 따라 판단하는 게 옳다. 국론의 분열과 소모적인 논란을 막기 위해선 사법부의 최종 판결이 한시 바삐 나오고 국민은 이에 승복해야 한다.

박영균 편집국 부국장 parky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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