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플러스]배우는 보람 어울리는 기쁨 “그래, 이 맛이야”

  • 입력 2006년 11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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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노인 24명이 길이 163m의 200폭짜리 매화병풍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달 18, 19일 경기 고양시 일산 호수공원에서 열린 ‘2006 실버문화 사랑축제’에 참가한 강원 동해시문화원의 실버문화교실 수강생들이다. 관람객들은 노인들의 열정에 많은 박수와 격려를 보냈다. 홍진환 기자
여성 노인 24명이 길이 163m의 200폭짜리 매화병풍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달 18, 19일 경기 고양시 일산 호수공원에서 열린 ‘2006 실버문화 사랑축제’에 참가한 강원 동해시문화원의 실버문화교실 수강생들이다. 관람객들은 노인들의 열정에 많은 박수와 격려를 보냈다. 홍진환 기자
‘화순 향토문화 지킴이’인 한 노인이 청중에게 향토 문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정동우 사회복지전문기자
‘화순 향토문화 지킴이’인 한 노인이 청중에게 향토 문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정동우 사회복지전문기자
《‘화순 고인돌의 생성 과정과 그 돌의 채석장에 대해 설명하시오.’

‘정암 조광조 선생의 일생과 묘소의 특징에 대해 설명하시오.’

‘화순 운주사가 다른 사찰과 다른 특징과 천불천탑에 얽힌민간설화에 대해 말하시오.’

어느 대학 한국사학과의 시험 문제가 아니다.

전남 화순군문화원이 올해 9월 노년 교양강좌인 ‘땡땡땡! 실버문화학교’ 이수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시험 문제다.

출제자는 이수철(67) 문화원장.

응시자는 오정섭(81·화순군 능주면 석고리) 씨 등 23명.

응시자의 연령은 64세에서 81세까지 다양하며 평균 학력은 고졸이다.

이 가운데 6명은 여성이다.

이들의 전직은 농업, 교사, 공무원, 회사원, 주부 등 다양하다.》

이들은 6월 ‘향토문화 지킴이 선발을 위한 실버문화학교’ 수강생 모집 플래카드를 보고 찾아온 수강생들이다. 40여 명이 수강신청을 했지만 예산 관계로 23명만 선발됐다. 이들은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2시간씩 3개월간 화순의 향토문화에 대한 집중 교육을 받았다. 이들은 화순군의 13개 읍면에서 버스 등을 타고 모여 강의를 들었다. 강의는 이 원장과 인근 광주대, 목포대, 전남과학대 교수 등이 맡았다.

강의는 실내 수업과 현지답사 등으로 진행됐다. 9월에 치른 시험은 3개월간의 1차 교육과정을 마친 뒤 분야별 ‘전공 편성’ 시험이었다. 그 결과 고인돌, 조광조, 운주사, 쌍산의소 등 모두 6개 분야에 걸쳐 3∼7명씩의 ‘향토문화 지킴이’가 정해졌다. 이들은 다시 분야별로 1개월간 심화교육을 받았다. 수강생들은 예습과 복습은 물론이고 거주 지역의 설화, 전설, 민담까지도 채집해 와서 다른 수강생들에게 나누어 주고 그룹 스터디를 하는 열의를 보였다.

이들이 그동안 갈고 닦았던 실력을 과시할 기회가 찾아왔다. 이달 18, 19일 경기 고양시 일산 호수공원에서 열린 ‘2006 실버문화 사랑축제’가 그것이었다. 전국문화원연합회가 주최한 이 행사에서 ‘화순문화 지킴이’들은 모여든 청중을 상대로 전공 분야별로 차례로 나가 슬라이드 등을 보여 주며 화순 문화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웬만한 대학 교수의 강의를 뺨칠 정도로 알차고 재미있는 내용들이었다.

청중이 그날 그들에게서 듣고 얻은 것은 강의 내용만이 아니었다. 그들의 향토문화에 대한 긍지와 열의, 이를 통한 건강한 노후 생활이야말로 강의 이상의 감동을 청중에게 줬다.

화순 고인돌에 대한 강의를 했던 최종채(64·화순군 화순읍 벽라리) 씨는 “향토문화에 대해 배우고 지식을 쌓아가면서 은퇴 생활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주 2회씩 관심 분야를 배우면서 공동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어 생활에 활기가 넘친다는 것이다.

가정주부인 최나희(65·화순군 도곡면 신덕리) 씨는 “이번 문화교실을 통해 비로소 노년기에 참여를 통한 친구 사귀기와 관심 분야에 대한 몰입이 얼마나 재미있고 보람찬 것인지를 알게 됐다”며 “제2의 인생을 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 씨는 이 문화원 실버노래교실 회장도 맡고 있다.

이번 행사에서는 이틀 동안 길이 163m의 200폭짜리 매화병풍 그림을 완성한 강원 동해시문화원의 실버문화교실 수강생 24명도 큰 관심을 모았다. 60세에서 77세까지의 여성 노인들로 구성된 매화병풍 그리기 팀은 6월부터 이 문화원에서 매화 그리기를 배워 왔다.

이들이 호수공원 야외에 마련된 대형 화폭에 매화나무와 화사한 매화를 그려 나가자 관람객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작품의 수준이 뛰어나서가 아니었다. 차양용 모자와 앞치마를 입은 노인들이 진지한 모습으로 하나하나 매화를 그려 나가는 모습 자체가 아름다워서였다.

‘매화 그리기 팀’ 역시 60세를 넘긴 나이에 새로운 것에 몰두하고 그 과정에서 친구들을 사귀는 것에 큰 보람과 긍지를 갖고 있었다. 심영자(67·강원 동해시 발한동 삼정아파트) 씨는 “이 과정을 통해 내 안에 숨어 있었던 예술적 감각을 발견해 나가는 것도 기쁘고 수준 높은 친구들을 사귀는 것도 즐겁다”며 “매화 그리기 강좌를 수강하면서 기분이 늘 상승되어 있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최성순(62·동해시 천곡동 미주빌라) 씨도 “매화 그리기 과정을 통해 지식과 교양 그리고 친교를 한꺼번에 얻을 수 있어 1석 3조인 셈”이라며 “남편도 매우 좋아해 적극 후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름다운 노후생활, 그것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이들이 만들어 가고 있는 삶이었다.

정동우 사회복지전문가 forum@donga.com

■ 전국 50개 지역 문화원 현황

전국 50개 문화원이 올해 6월부터 시작한 ‘땡땡땡! 실버문화학교’는 문화관광부가 로또복권 기금에서 10억 원을 배정받아 문화원당 1500만 원씩 나누어 주어 시작된 사업이다.

해당 문화원은 그 지역 고유의 향토문화 아이템을 선정해 희망하는 노인들을 교육하고 이들이 문화 지킴이로 지역에 기여하게 하는 사업을 펴서 지방의 실버계층으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다.

평소 예산 관계로 모시기 어려운 전문 강사를 초빙할 수도 있고, 버스 등을 타고 현장답사도 가능해 졌기 때문이다. 실버계층의 건강한 여가 생활과 문화 욕구를 동시에 해결하는 프로그램인 셈이다.

1950년대 초부터 생긴 비영리 민간기구인 문화원은 대도시에서 산골오지와 섬 지역까지 전국 234개 시군구 가운데 224개 지역에 설치되어 있다. 문화원은 지역 문화의 거점 역할을 한다. 각 지방의 문화 예술 축제나 지방문화제는 그 지역의 문화원이 주축이 되어 실시하는 경우가 많다.

운영비는 문화원당 교부세와 지방자치단체 보조금 등 연간 7800만 원이 전부여서 유급 직원 2명의 월급 주기에도 빠듯하다. 따라서 농촌지역에서 문화사업을 하거나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하기란 무급 명예직인 원장이 개인 호주머니를 털지 않는 한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도시 지역 문화원들은 꽃꽂이 사물놀이 사군자 서예에서 외국어 강의까지 대개 20여 개의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프로그램당 월 1만 원을 받는다. 반면 농어촌 지역은 10개 미만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경우가 많고 회비도 무료다.

장상호 전국문화원연합회 사무총장은 “노인종합복지관이나 종합사회복지관들이 연간 운영비로 지자체에서 4억∼10억 원씩 받는 것에 비하면 문화원은 하는 일에 비해 너무 소외되어 있다”고 말했다.

정동우 사회복지전문기자 foru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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