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실 X파일]남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만사가 형통

  • 입력 2006년 11월 17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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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입장에서 생각하라’는 말이 있다. 조직생활에서 오해나 갈등은 상대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업무를 방해하는 요인도 된다.

2004년 1월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발사한 화성탐사선 스피릿이 화성에 안착해 지구로 사진을 보내기 시작했다. 이에 앞서 어처구니없는 실수가 있었다. 1999년 9월 NASA는 화성 탐사 목적으로 1500억 원을 들여 우주탐사선을 발사했다. 그러나 탐사선은 궤도에서 90km나 이탈하면서, 화성 대기권에서 폭발해 순식간에 우주 쓰레기가 되고 말았다.

이 사건의 근본적인 이유는 여러 연구팀이 서로 다른 측정단위를 사용한 데 있다. 탐사선을 제작한 록히드마틴 항공연구소는 미터법이 아닌 파운드법을 사용했다. 탐사선 운항을 맡은 NASA의 제트추진팀은 미터법을 쓰는 컴퓨터에 제작팀에서 받은 파운드법 단위를 그대로 입력해 계산했다. 단위가 다르니 잘못된 값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

우리 연구실에서 이 상황을 일반인에게도 적용해 보기로 했다. 우선 실험참가자를 두 그룹으로 나눴다. 각 그룹을 또 두 팀으로 나눠 한 팀에는 부품을 설계하는 디자인팀 역할을, 다른 한 팀에는 디자인팀의 설계에 따라 부품을 만드는 제작팀 역할을 맡겼다.

두 팀은 각각 다른 방에 있고 연락은 팩스로만 주고받을 수 있다. 두 팀에는 서로 다른 측정단위를 쓰게 했다. 물론 참가자들에게는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한 그룹에는 시작하기 전에 문서로 ‘상대팀의 입장에서 생각하라’고 지시했고, 다른 한 그룹에는 하지 않았다.

실험을 마치고 디자인팀의 설계도와 제작팀이 만든 부품이 얼마나 정확히 일치하는지를 비교했다. 그 결과 지시를 받은 그룹이 부품을 더 빠르고 정확하게 만들었다. 결국 팀 간에 단위가 다르다는 사실을 빨리 알아차려 단위를 통일한 그룹이 이긴 것.

지금까지 한국 대학생뿐 아니라 미국 경영대학원 학생, 고위경영자 과정을 수강하는 실무경영인 등 80여 개 그룹을 대상으로 실험해 비슷한 결과를 얻었다. 이는 다른 팀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 팀 간 협력을 증진하고 업무 수행에도 도움이 됨을 시사한다.

남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사회심리학에서는 이를 ‘타인 관점 취하기(perspective-taking)’라고 부른다.

케케묵은 경구에 불과한 것처럼 느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단순한 행동원리를 따르지 않았을 때의 ‘실(失)’은 생각보다 클 수 있다.

최훈석 성균관대 심리학과 교수 hchoi@skk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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