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조수진]“사라질 정당이 창당기념식은 무슨…”

  • 입력 2006년 11월 10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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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조급했던 것은 아닌지, 우리의 결속이 부족했던 것은 아닌지, 대응이 미숙한 점은 없지 않은지 겸허히 반성한다.”(2004년 11월 11일 열린우리당 창당 1주년 기념식)

“자만심에 젖어 무사안일에 빠졌던 것은 아닌지, 지나친 도덕적 우월감에 사로잡혀 국민의 목소리를 듣는 데 소홀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하고 있다.”(2005년 11월 11일 열린우리당 창당 2주년 기념식)

“당의 지지율 하락과 진로를 둘러싼 논란이 있는 점, 구논회 의원의 사망 등을 고려해 11일 북한산에서 갖기로 한 창당 등반대회를 취소한다.”(2006년 11월 8일 열린우리당 창당 3주년 관련 대변인 브리핑)

창당 3주년을 이틀 앞둔 9일 열린우리당의 분위기는 이상했다. 조촐하지만 생일 잔칫상은 마련됐던 예년과 달리 이번엔 등반대회마저 취소됐다.

하지만 안타까워하는 사람은 눈에 띄지 않았다. 수도권의 한 재선 의원은 “창당 기념식? 해당(解黨) 기념식이 될지 모르는데 무슨…”이라며 말을 흐렸다.

하긴 열린우리당 창당 주역 중 한 명인 천정배 의원이 ‘통합신당 창당’의 전도사로 나섰고, 지도부인 김한길 원내대표가 국회 교섭단체 연설에서 “열린우리당의 정치 실험을 이제는 마감해야 한다”고 사실상 ‘당 폐업 선고’를 한 상황이니 새삼 창당 기념식을 하기가 쑥스럽긴 할 듯하다.

이날 국회 본회의 대정부 질문에 참석하기 위해 국회 본관에 모인 의원들 사이에선 ‘통합신당 창당’ 논의만 무성했다. 몇몇 의원이 “그동안의 국정 실패를 반성하자”고 외쳤지만, 그 또한 진지한 반성보다는 ‘신장개업’을 위한 명분 쌓기용으로 들리는 게 현실이다.

문을 연 지 3년이 안 돼 창당 기념식도 못하고 마감해야 할 처지라면 우선 그 실패 원인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게 순리다. 구멍가게를 하다 망한 사람도 이렇게 한다. 반성하지 않으면 신장개업을 한다고 해도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열린우리당은 어떤가. 열린우리당은 그 와중에서도 이날 내년 대통령 후보 경선에 대비한 ‘오픈 프라이머리(국민경선제)’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 참석자들 사이에서는 “잘하면 내년 대선도 승산이 있는데”라는 말이 나왔다. ‘잘하면’이라는 말이 복권을 사는 사람들의 요행수와 닮았다면 지나칠까.

조수진 정치부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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