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영균]달콤한 복지의 함정

  • 입력 2006년 9월 25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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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교육부총리 자리에서 낙마했지만 김병준 전 대통령정책실장은 나름대로 대단한 ‘성공’을 거두고 있다. 그의 정책과 행정 스타일이 국정 곳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어서다. 첫째로 부동산에 대한 과중한 세금과 관련해 ‘세금폭탄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한 예언이 위력을 발휘하고 있고, 둘째로 부동산 제도는 다음 정권에서도 ‘법 바꾸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호언이 국정의 다른 분야에서도 차용되고 있다.

우선 재산세 고지서를 받아 든 국민은 세금 폭탄의 위력을 실감한다. 일부 재정이 넉넉한 구청이나 시청에서는 부담을 줄여 줬지만 상대적으로 가난한 곳에서는 감면도 적어 폭탄의 폭발 효과는 배가되었을 터이다. 김 전 실장은 얼마나 흐뭇할까. 재직 시절 만든 세금이 본격적으로 효력을 발휘하고 있으니 말이다.

부동산 제도는 다음 정권에서도 바꾸기 어려울 것이라는 ‘장담’도 실현될 조짐을 보인다. 부동산 거래세를 약간 낮추기는 했지만 야당인 한나라당조차 지자체의 세수가 줄어든다며 반대하지 않던가. 일단 세금의 단맛을 보고 나면 여당이든 야당이든, 중앙정부든 지방정부든 유혹을 뿌리치기가 쉽지 않다. “부동산 세금으로 거둔 돈을 중앙정부가 아닌 지방자치단체가 갖도록 해 놨으므로 단체장과 지역 국회의원이 부동산 정책의 수호천사가 될 것”이라는 그의 발언은 허풍이 아니었다.

세금이든 정책이든 확실한 수호천사를 만들어 훗날 바꾸기 어렵게 만든다는 ‘김병준 스타일’이 마치 바이러스처럼 국정 전반에 스며든다. 첫 계승자는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다. 확실한 복지 수혜층을 만들면 후임자가 쉽게 물릴 수도 없다. 건강검진이나 보험 급여를 확대하면 환영을 받을지는 모르지만 그 대가는 건강보험료의 대폭 인상이나 재정부담으로 돌아온다. ‘김병준표 세금폭탄’이 ‘유시민표 건강보험료 폭탄’이 될까 걱정이다.

더 확실한 정책의 수호천사는 일자리 만들기다. 문화관광부는 내년에 문화예술 분야에서 6000여 개의 일자리를 새로 만들겠다고 하고 범부처 차원에서 ‘일자리 80만 개 창출’ 대책이 추진되고 있다. 내년에만 1조 원 이상의 재원이 든다. 후임자든 다음 정권이든 이 예산은 줄이기 어렵다. 남의 일자리를 뺏는 게 쉬운 일인가.

일자리를 주고 건강을 챙겨 준다는 데 싫어할 사람은 없다. 그러니 한번 확대된 사회복지의 수준을 다시 후퇴시키는 일은 지극히 어렵다. 스웨덴의 사례를 보면 달콤한 복지 확대가 결국은 일자리를 줄이고 민생을 어렵게 만드는 ‘함정’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비대한 복지 재정이 국민의 허리를 휘청거리게 만든 주범임을 확인하고 나서 고치기에는 실패의 비용이 너무 크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선심성 복지 정책은 확대될 게 분명하다. “국민 후생과 경제성장이 같이 가지 않으면 성장은 의미가 없다”고 한 노무현 대통령의 말이 이를 예고하고 있다. 선심 정책이 노리는 것은 유권자의 표다. ‘평상시에는 논리적으로 판단하다가도 투표소에 가면 당장 복지수당을 약속하는 정당에 표를 던진다’는 유권자의 약점을 악용한다.

다음 정권이 어느 쪽이든지 관계없이 복지의 비대화, 비만화는 장기적으로 해롭기만 하다. 과다한 복지 약속을 지키기 위해선 세금을 더 걷든지, 나랏빚을 늘리는 수밖에 없다. 이미 세금이 잘 걷히지 않아 일부 시군에서는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내년에 300조 원에 이를 나랏빚을 더 늘리는 것도 한계가 있다. 복지수당에 의존하던 사람들에게 약속한 수당을 지급하지 못하는 사태가 남의 일만은 아니다. 소련이 무너지기 직전 배급소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이 눈에 선하다. 무리한 복지를 막고 필요한 복지를 분별할 장치가 시급하다.

박영균 편집국 부국장 parky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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