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피해보는 환자들, 지쳐가는 교수님 보며 죄책감 느껴 복귀”…빅5병원 전임의 인터뷰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5월 14일 14시 53분


코멘트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에서 의료진이 걸어가고 있다.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 없는 자료 사진) (서울=뉴스1)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에서 의료진이 걸어가고 있다.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 없는 자료 사진) (서울=뉴스1)


“저희의 도움을 원하는 환자들을 마냥 외면할 수는 없었어요.”

서울대병원 전임의 1년 차 A 씨(33)는 잠시 고민하다 덤덤한 목소리로 병원에 복귀한 이유를 밝혔다. 올해 2월 전공의(인턴, 레지던트) 병원 이탈 이후 약 3개월이 지났다. 대형 병원 등에서는 진료와 수술이 크게 줄며 환자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다만 최근 의료 현장에 복귀하는 전임의들이 점차 늘고 있다. 14일 기준 주요 수련병원 100곳의 전임의 계약률은 67.3%, 5대 대형 병원(서울대, 세브란스, 서울아산, 삼성서울, 서울성모병원)의 경우 70.4%에 달했다. 전임의 10명 중 7명이 현장에 복귀한 셈이다. 전공의 이탈 이후인 2월 29일 주요 수련병원 100곳과 5대 대형 병원의 전임의 계약률은 각각 33.6%, 33.9%에 불과했다. 병원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5대 대형 병원 소속 전임의 2명을 인터뷰했다.

● “현장 지키며 목소리 내는 의대 교수 보며 복귀 결심”

3월 1일 병원을 이탈한 A 씨는 2주 만에 복귀를 결심했다. 그는 “환자들의 피해는 점점 심각해졌고 사태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많은 환자들을 마냥 외면할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전임의 대부분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에 근거가 없다고 생각한다. 전공의와 같은 마음이지만 표현 방식이 다를 뿐”이라 했다. A 씨는 또 많은 전임의들이 의대 교수들이 현장을 지키면서도 목소리를 내는 모습을 보고 돌아오게 됐다고 설명했다. 함께 근무하는 같은 과 전임의 8명은 4월 중순에는 모두 현장을 지키고 있다. A 씨는 “우리 병원 전임의 대부분 교수로 임용되고 싶어한다”며 “우리가 할 일을 하면서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5대 대형 병원 내과 전임의 2년 차 B 씨(31)는 환자들의 피해와 병원에 남은 의료진의 ‘번아웃’(탈진)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는 나흘만에 복귀했다. B 씨는 “이번 사태로 피해를 당하는 사람은 결국 환자들”이라며 “특히 내과는 중증 환자 비율이 높다. 업무 지연이 늘고 지쳐가는 의료진들을 보고 죄책감을 느껴 복귀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서울대병원 필수 의료과의 한 교수는 “전임의는 피교육 기간이 1년 정도로 전공의들처럼 조직이 만들어져 있지 않다”며 “교수들의 요청에 대체로 복귀한다. 인원이 많지 않아 의료 현장을 지키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통상 전임의들이 병원과 계약하는 시기는 3월 초다. 다만 공보의와 군의관 근무를 마친 의사들은 5월 초에 계약하기도 한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5월 계약 시기와 맞물려서 전임의 계약이 늘었다”고 말했다.

● 의료 현장서 전공의 공백 메우는 전임의들

전임의들은 후배 의사들인 전공의의 공백을 메우고 있다. B 씨는 외래 진료, 시술, 연구 등 기존 전임의 업무에 더해 입원 환자 처방, 기록, 야간 당직 등 전공의 업무까지 맡았다. B 씨의 진료과 전임의 11명 중 3명만 돌아왔다. 전임의가 많이 돌아오지 않은 현장에선 업무 과중이 크다. 그는 “일주일에 2번 야간 당직을 들어가며 하루도 쉬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며 “밥도 먹지 못하고 일할 때가 너무 많다”고 토로했다.

A 씨도 역시 기존 전임의 업무에 환자 주치의, 병동 당직, 처치 등 전공의 업무까지 맡고 있다. 일주일에 2, 3번 수술실에 들어가며 1, 2번 당직을 선다. A 씨는 “전임의들이 돌아와 업무 강도는 상대적으로 낮아졌다. 전공의들이 없어 업무 범위는 넓어졌지만 환자도 평소보다 줄었다”고 설명했다.

두 전임의는 사태의 조속한 해결을 촉구했다. B 씨는 “이번 사태로 고통받는 환자와 국민들께 죄송하다. 정부와 전공의가 이렇게 강하게 대치하는 상황 자체가 마음이 아프다”며 “서로 적당한 선에서 타협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A 씨는 “인력이 상대적으로 많은 서울대병원과는 달리 중소병원은 매우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며 “정부가 대화 의지를 높이고 하루빨리 이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앞으로도 현장에 남겠다고 했다. B 씨는 “의료 인력에 한계가 있어 환자를 전원해야 하는 경우가 많이 생기고 있지만 현장에서 최대한 환자들을 돌보겠다”고 말했다. A 씨는 “결국 누군가는 환자를 지켜야 한다. 내 자리에서 묵묵히 할 일을 할 것”이라고 했다.

여근호 기자 yeoroot@donga.com
#전임의#전공의#의대 교수#의료진#환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